그가 교정선교에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질적인 답을 들려줬다. “언젠가는 수형자들이 출소해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직업훈련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이 달라져야 해요. 마음의 치유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진심을 나눌 때 가능합니다.”
피아노 반주하다 깨진 마음
이 권사는 1985년 1월 피아노반주 부탁을 받고 서울남부교도소 예배모임에 처음 참석했다. 손이 시려 건반을 제대로 칠 수 없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수형자들은 손뿐 아니라 얼굴의 근육까지 얼어붙은 듯 표정이 없었다. 주눅 들고 잔뜩 긴장한 그들의 얼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사무실에 가면 남자들이 아버지에게 막 혼나고 있더라고요. ‘뭔가 큰 잘못을 했나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수형자들의 얼굴에서 그 옛날 아버지에게 혼나던 남자들의 얼굴을 보게 된 겁니다. 아버지가 검사셨어요. 죄를 낱낱이 들춰내며 심하게 혼을 냈던 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진정으로 그들을 교정교화하지는 못하셨어요.”
그날 이 권사는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꽁꽁 언 손으로 반주하며 다짐했다. ‘주님, 아버지를 대신해 제가 그들을 돕겠습니다.’
이 권사는 현재 서울남부교도소와 안양교도소 등 교정시설 4곳에서 ‘수형자 찬양대’ 지휘자 겸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남부교도소는 매주 두 차례 방문한다. 목요일은 복역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금요일은 전국 교도소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러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린다.
안양교도소 찬양대는 지난 4월부터 격주 화요일에 20여명의 수형자들이 모여 성가곡을 배우면서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형량이 긴 수형자들이 많다. 이 권사는 남자 수형자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우리 형제들이 좀 거칠어요. 처음엔 팔짱을 끼고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더라고요. 한두 번은 거들먹거리며 따라 부르죠. 그러다 어느 순간 자세를 바꿔 앉아요. 이내 찬송가 가사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마음까지 움직이는 거죠.”
수형자 찬양대는 본인이 원하면 입단할 수 있다. 대부분 예배에 참석했다가 현재의 내 모습과 다른 찬양대원인 수형자를 보고 스스로 선택해 들어온다.
찬양을 부르다 치유 된 마음
이 권사는 직접적으로 전도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은혜, 회개를 다룬 찬송이나 성가를 가르치면서 함께 말씀을 나눈다. 수형자들은 ‘멀고 험한 이 세상길’ ‘세상에서 방황할 때’ ‘아 하나님의 은혜로’ 등의 찬양을 좋아한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는 여자 수형자들이 즐겨 부르는 곡이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 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 같은 내 마음 어루 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수형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형제들보다 자매들이 음악에 더 민감하다. 의외로 중형을 받은 자매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권사는 “폭력이나 폭행 등을 견디다 못해 결국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라며 “그러니 자매들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얼마나 크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수형자들에게 강조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찬양을 나의 고백으로 만드세요. 주님의 사랑이 떠났을 때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또 주님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치유가 된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권사는 청주여자교도소에서 ‘하모니 합창단’을 만들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하모니’로도 탄생했다. 주의 사랑, 은혜로만 진정한 회심과 교정이 이뤄진다.
‘선불제 하나님’을 함께 찬양했으면
모태신앙인 이 권사는 원광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성악으로 전과했다. 졸업 후에는 교편생활을 했다. 어머니합창단이나 실버합창단을 만들었고, 교정시설에선 지휘자 반주자로 교정선교를 하고 있다. 인생의 결과를 놓고 보면 잘했다.
그래서 이 권사는 ‘선불제 하나님’을 전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이처럼 먼저 받은 은혜가 크니 우리 함께 그 복을 나누며 살자는 것이다. 그에게 나눔의 대상은 수형자들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깜찍한 부탁 하나를 했다. 광고를 하고 싶다며 문안도 만들었다. “나와 함께 찬양대를 해온 형제들에게. 늘 출소하는 우리 형제들에게 음악회 한 번 하자고 말만 하고 실천을 못했어요. 시간과 장소 확실하게 정해지면 제대로 광고할게요. 그 전에 ‘권사님, 나 잘 살고 있어요’라며 가끔씩 얼굴 보여줬으면 해요. 궁금한 형제들이 많아요.”
20년 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찬송가를 거꾸로 들고 찬양을 불렀던 A씨, 의정부교도소 중창단 출신으로 단원들에게 손수건을 선물했던 B씨, 무기수에서 감형돼 출소한 후 노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C씨…. 이 권사는 이들과 음악회를 여는 꿈을 꾸고 있다.
노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