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공식화했다. 사실상 'FTA 개정' 협상을 위한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무역 장벽을 제거하고 협정 개정 필요성을 고려하기 위해 한국에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 요구를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무역 손실을 줄이고 미국인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특별공동위는 한미 FTA 개정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여 현행 FTA를 뜯어고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재협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미 특별공동위가 재협상 개시를 위한 사전 절차라는 점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우리의 대(對)한국 상품수지 적자는 132억 달러에서 276억 달러로 배가됐고, 미국의 상품 수출은 실제로 줄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특별공동위원회를 다음달 워싱턴에서 열자고 제안했다. 현재 한미 FTA 협정은 한쪽이 공동위원회 특별회담 개최를 요구하면 상대방은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통상교섭본부장이 공석인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는 중이고, 이에 따라 공동위원회의 우리 측 의장인 통상교섭본부장도 임명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미국 측과 실무 협의를 통해 개최 시점을 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가 전체 협정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바꾸는 '재협상(renegotiation)'이 아니라 일단 협정 개정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협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무역 협정을 개정하려면 협상 권한을 보유한 의회로부터 협상권을 위임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본협상 개시 90일 전 의회에 통보하고, 30일 전 협상 목표와 전략 등을 의회에 보고해야 한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또 주형환 산업통상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특별공동위는 중요한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루고 미국의 대한 수출의 시장 접근성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더욱 균형 잡힌 무역 관계와 진실로 공정하고 평평한 운동장을 조성하는 진전을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요구대로 다음달 특별공동위원회가 열리고 미국 정부가 협정 개정을 밀어붙여 국내 절차에 속도를 낼 경우 이르면 11월쯤 양국 간 재협상이 개시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가진 언론발표에서 "지금 한미 FTA 재협상을 시작하고 있다"며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FTA 영향 등을 조사, 분석, 평가해 보자고 역제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특별공동위 요구가 실제로 재협상 국면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對)한국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계산으로 개정을 염두에 두는지는 미국의 후속 조처를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을 주장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경우 USTR이 지난 5월 의회에 "오는 8월 16일부터 재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공식으로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론적으로는 만약 미국이 다음 달 특별공동위를 개최하는 즉시, 미 의회에 재협상 개시를 통보한다면 오는 11월부터 재협상에 착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