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의 국민정책 제안 창구인 ‘광화문 1번가’가 12일 오후 4시 정책 접수를 마감한다. 국민인수위원회가 5월 25일 활동을 시작한 지 49일 만이다. 온·오프라인과 콜센터, 우편 등을 통해 지난 11일까지 총 15만4000건에 달하는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국민인수위는 이를 바탕으로 최종보고서를 작성해 다음달 말 타운홀미팅 형식으로 진행되는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에서 공개할 계획이다. 일자리·노동, 행정, 정치개혁, 보건·복지, 저출산 등 각 분야에서 공감을 얻은 제안들을 들여다봤다.
◇ 도로명 주소
행정 분야에선 2014년 도입된 도로명 주소를 없애거나 개선해 달라는 제안이 꾸준했다. 정부의 주먹구구 행정 때문에 국민의 불편이 가중된다는 불만이 많았다. 인천 청라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국민인수위원은 “계약서 작성 시 도로명 주소를 입력할 때마다 화가 난다”며 “손님들도 자기 집 주소를 못 외우는 사람이 태반이고, 왜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편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디지털 시대에 굳이 도로명 주소를 쓰기보다 사람들이 익숙한 지번 주소를 쓰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도로명 주소에 표기되는 길 종류가 너무 많다보니 기존 지번 주소보다 불편하고, 택배기사들도 주소를 불편해 한다는 불만도 있었다.
◇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정치개혁 분야에선 국회의원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인수위에 따르면 국민소환 관련 정책제안은 112건이나 된다. 총선에서 온갖 좋은 이야기들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은 의원들이 당선되면 ‘나 몰라라’하는 경우가 많고, 여론을 무시한 행동을 일삼는다는 게 국민들의 불만이었다.
현재 국회에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국민소환제 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국회의원이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를 한 경우 직전 총선 전국 평균 투표율의 15% 이상 지역구 주민의 서명을 받을 경우 선관위에 국민소환 투표를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황영철 의원 등 바른정당 의원 33명도 국회의원이 청렴 의무를 위반하거나 지위 남용으로 사익을 추구한 경우 유권자 15%의 서명으로 국민소환 투표를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 칼퇴근… 야간 업무카톡 금지
정책 제안 건수에서 늘 상위권에 올라 있었던 일자리·노동 분야에서는 과도한 노동시간과 업무지시를 막아 달라는 제안이 많았다. 남편이 대기업에 근무한다고 소개한 국민인수위원은 남편이 업무를 끝내고 집에와도 새벽 3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그는 “주 5일을 3~4시간만 잔다고 생각해보라”며 “열심히 하라는 말이 그냥 과로사하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무섭게 들린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과도한 업무량을 사원들에게 배당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며 “퇴근 후 회사 컴퓨터 접속을 차단한다든지 메시지를 통한 업무지시도 초과근무로 인정한다든지 해서 근무시간 외에 일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스쿨존 과속단속카메라
차량들이 시속 30㎞ 이하로 달리도록 돼 있는 스쿨존 규정을 위반하고 있어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스쿨존에서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과속하는 차량들이 많아 아이들이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국민인수위원은 “운전자들도 스쿨존에서는 당연히 아이와 보행자 우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남 창원에 사는 한 초등학생은 홈페이지에 “주행속도 상한선을 시속 30㎞에서 25㎞로 낮추고 벌금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 미세먼지 대책
안전·환경 분야에선 미세먼지 대책을 요구하는 의견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대로 미세먼지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 권고기준 이상으로 높이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는 공기청정기를 설치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전국 초·중·고등학교 1만1000곳에 간이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 난임부부 지원
난임부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국민인수위원은 “난임 스트레스로도 힘든데 병원에 갈 때마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다”며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난임시술 지원에 횟수 제한이나 나이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10월부터 난임 시술비와 검사비·마취비·약제비 등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 난임부부의 시술비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 액티브 엑스(Active X)
온라인 금융결제 시 사용되는 보안용 응용프로그램 액티브 엑스를 폐지해 달라는 의견도 많았다. 국민인수위는 지난달 17일까지 접수된 제안 검토보고서를 국정기획자문위에 제출할 때 금융·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에서 액티브 엑스를 폐지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미래창조과학부 등 관계부처는 국민인수위 제안을 받아들여 액티브 엑스 등 번거롭고 불필요한 규제 폐지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