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몰라도 인영이를 보면 고맙다. 처음 아팠을 때는 치즈 등 유제품을 못 먹었다. 조금 나아지고 나서 인영이가 좋아하는 치즈를 먹을 때 감사했다. 항암치료로 다 빠진 머리가 조금씩 날 때 또 감사했다. 며칠 전 아내가 인영이 머리를 묶었을 때는 씩 웃음이 나왔다. 지난 주말 키즈카페에 가서 방방 뛰는 모습을 보면 그저 기쁘다. 아직은 아이들 없는 시간을 이용하지만 인영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뛸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인영이처럼 아픈 아이들을 둔 부모님들은 ‘나중에’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중에 다 낫고 나서 뭘 해주기에는 지금 현재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인영이가 머리를 묶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한글 공부 시늉만 하는 것으로 좋다.
최근 건강장애학생학부모회를 통해, 10년간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17살에 하늘로 간 딸을 기리며 1억원을 기탁한 부모님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아빠와 엄마가 10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10년 동안 아이를 통해 얼마나 행복했을지를 상상해봤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특히 아픈 아이는 더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