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경화 우동연.'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만들어졌다. 문 대통령의 왼쪽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오른쪽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 순방은 문 대통령의 다자 정상회의 '데뷔 무대'였다. 8개국 정상과의 양자회담, 2개 국제기구 수장과의 단독면담, 한·미·일 다자회담, 20개국 정상회의 등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거의 모든 회담·회의에 두 사람이 늘 배석해 문 대통령의 양옆을 지키며 보좌했다. 그 결과 여러 고비를 순탄하게 넘겼고 성공적인 결실을 거뒀다는 의미가 이 말에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을 수행 중인 청와대 관계자는 8일(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연쇄 회담 일정에서 김 부총리와 강 장관은 항상 문 대통령 옆에 배석했다. 고비 고비마다 김 부총리가 문 대통령을 '서포트'하거나 강 장관이 풍부한 국제기구 경험을 활용해 보좌했다. 우리는 '좌경화 우동연'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 '우동연'… 김동연 부총리
문재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베를린시의 옛 청사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신(新)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대북정책의 최우선 방향으로 내걸며 북한에 동참을 요구했다. 연설이 끝난 뒤 질의답변 순서에서 사회자가 질문을 했을 때였다. 문 대통령이 답변하던 중에 김동연 부총리가 단상에 올라가 문 대통령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다.
당시 단상 아래 앉아 있던 김동연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답변을 듣다가 순간적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문 대통령 답변은 중국 관련 얘기로 흘러가고 있어서였다. 단상에서 좌중을 둘러보며 답변하던 문 대통령이 김 부총리의 이 표정을 읽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 순간 문 대통령이 김 부총리에게 사인을 보냈고, 김 부총리가 단상에 올라가 문 대통령에게 질문을 다시 환기해드리고 내려왔다. 이후 문 대통령이 질문에 딱 맞게 적절한 답변을 하면서 상황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 '좌경화'… 강경화 외교장관
문재인 대통령이 8개국 정상과 가진 양자회담에서는 공통적인 패턴이 나타났다. 외국 정상이 질문하고 문 대통령이 답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외교무대에서 '한국 지도자의 생각'은 9개월 넘게 백지로 남아 있었다. 이번 정상회의는 그 공백을 메우는 자리였고, 외국 정상들은 문 대통령의 의견을 매우 궁금해 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5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1시간30분 만찬 회담에서 ‘깨알’ 같은 질문을 쏟아내며 문 대통령에게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회담 결과를 브리핑하며 "메르켈 총리의 끊임없는 관심과 질문이 이어졌고, 문재인 대통령의 답변이 뒤를 잇는 형태였다. 메르켈 총리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질문의 개수와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당시 메르켈 총리가 던진 질문 중에는 “국민의 41%로부터 지지를 받아 당선됐는데,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는 어떻게 끌어안을 생각이냐”는 다소 도발적인 물음도 있었다. 문 대통령은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빠른 성장의 후유증으로 나타난 경제적 불평등부터 해소해야 한다”며 “독일이 통일 후 계층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룬 사회적 경제모델을 참고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 답변이 끝나자마자 배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강 장관은 “메르켈 총리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라고 발언 기회를 얻은 뒤 “문 대통령께서 41%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지만, 취임 후 국민적 지지율이 80%를 웃돌고 있습니다. 사실상 국민통합에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라고 거들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문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부정부패 척결, 경제적 불평등 해소, 균형 잡힌 발전 등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