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환시, 환각 증상의 진짜 원인

입력 2017-07-08 15:33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판 위에 뿌린 다음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고 염소를 광야로 내보는 의식이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모든 죄가 불모지로 날아간다고 생각했다. ‘희생양 만들기’(이는 번역 과장에서 염소가 양으로 오역된 것임)이다. 크건 작은 어떤 집단 내에서 누군가가 희생양의 역할을 해 고통과 분노를 줄여 결속을 유지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가족 구성원 간에도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할 때 가족 중 가장 약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어 가족 간의 갈등을 배출할 출구로 만든다. 물론 무의식 중에 나오는 현상이므로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 채로.

C는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다. ‘헛것이 보인다. 귀신이 보인다’는 환시가 있어 병원을 찾았다. 혹시 정신 이상이 온 것이 아닌가 해 C의 부모님은 몹시 당황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이런 경우 상당수는 정신증을 의심할 수 있지만 C를 면담해 보니 일시적인 환시 현상은 있었지만 조현병과 같은 정신증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심한 심리적인 상처를 오랫동안 받아온 아이들이 우울감과 동반된 일시적인 환각 증상을 경험하는 그런 경우였다.

C는 사남매 중 셋째 딸이고, 아래로 남동생을 두고 있었다. 아들을 바라다가 낳은 세 번 째 딸인데다가, 바로 밑에 남동생을 보았으니 관심을 못 받고 자랐다. 함께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편애는 특히 심하셨다. 다소 또래 보다 발달이 떨어지고 특히 말이 늦었던 C를 항상 책망하고, ‘왜 항상 그 모양이냐?’라는 식으로 야단만 쳤다. 시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한 엄마는 C가 항상 안쓰럽긴 하지만 네 명의 아이들과 편찮으신 시부모님의 봉양으로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고 시부모님 눈치를 보느라 C에게는 짜증을 많이 냈다.

또 성격이 비슷한 C의 두 언니는 서로에 경쟁심이 많았지만 C를 대할 때는 둘이 편을 들어 C만 공격했다. 언변이 어눌하고 자기 주장을 못하는 C는 늘 당하면서도 말로써 대항해 보지 못하고 엉뚱한 상황에서 심한 짜증으로 표현하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C는 가족 내 에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꼴이었다.

집안에서 말썽꾸러기인 C는 학교에서도 똑같은 역할을 하였다.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C는 아이들의 놀림에 너무 쉽게 흥분하거나 폭력적으로 돌변하고, 이 때문에 C는 선생님들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다. 차츰 C는 피해의식이 생겼다. 조그만 일에도 상대가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공격했다고 느끼며 화를 냈다. 학교에서도 문제아가 된 것이다.

학교나 가족에서의 ‘희생양’은 대개 가장 약한 사람이다. 그가 ‘문제’로 지목되고 그 사람의 문제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C의 가족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C의 문제 행동, 환시) 이면에는 가족 구성원간의 문제나 고부간, 부부간, 자매 갈등이 깔려 있음을 인식하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필요함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진짜의 문제는 외면한 채로 내면이 약한 존재 C를 ‘못된 아이’로 만들어 각자 자신들 마음 속있는 원망과 죄책감을 다 퍼부어 결국은 ‘환시’ 이라는 증상이 만들어 졌던 것이다. 치료는 가족이 함께 받아야 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