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소리 보다 커진 기도 소리… 우크라이나 난민 돌보는 장종일·강정애 부부

입력 2017-07-07 15:23 수정 2017-07-07 23:08
2013년 말. 이른바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친러시아파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이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을 중단하면서 촉발됐다. 그리고 야누코비치의 축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한국인 선교사 장종일(뒷줄 오른쪽 세 번째) 강정애(왼쪽) 부부가 우크라이나 난민촌 휴모테교회에서 목회자와 교회학교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체에 광풍이 몰아쳤다. 우크라이나민족주의 세력은 러시아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그동안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온 친러시아 세력은 무장조직을 만들어 충돌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의 내전으로까지 번졌다.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 100만명이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 참혹한 전쟁터를 피해 난민촌으로 흘러들었지만, 이들에겐 추위와 굶주림이라는 새로운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과 복음을 전하는 ‘선한 사마리아인’ 한국인 선교사 부부가 나타났다. 장종일(62) 선교사와 강정애(60) 선교사가 그들이다.

키예프에서 차량으로 1시간여 떨어져 있는 휴모테 마을. 이곳은 희대의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터져 방사능으로 오렴된 체르노빌에서 불과 70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 있다.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이 마을로 모여들었다. 속속 난민촌이 들어섰고,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들과 함께 살게 됐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휴모테교회. 장 선교사 부부가 현지인 목회자와 함께 세운 농촌교회였다. 2002년 개척하고 난민을 헌신적으로 섬긴 결과, 현재는 많은 난민이 개신교 신앙으로 회복되고 새 삶을 살게 됐다.

두 사람이 설립한 17개의 교회 중 하나인 이 교회는 세르게이 타라수크 라마나비치(47) 목사가 섬기는 자그마한 교회지만, 난민촌 우크라이나인들에겐 없어선 안 될 처소다. 목사 부부는 사택을 고아원으로 운영하며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입양해 돌보고 있다. 고아원을 통해 자립한 아이들이 100여명에 달한다. 라마나비치 목사는 “저희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입양한 목적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나 사랑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했다.

2년 전 부모를 잃고 이곳에 왔다는 블라드미로비치(19)군은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며 거듭났다”며 “지금은 절망을 멀리 보내고, 거리에 나가 전도하고 찬양하는 기쁨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야나 블라디미르나(15)양은 “내전 중에 고아가 됐지만 이제 목사님 댁에 와서 잘 놀고 열심히 공부하며 생활한다. 무엇보다 새 가족이 생겨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한때 알코올과 마약에 빠졌던 사람들도 교회에서 운영 중인 중독재활센터에서 치료 받고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역현장에서 포즈를 취한 장종일 선교사 부부.

비카 율리아나 부나(43·여)씨는 “예전엔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삶이 다 망가져 감옥에 갈 정도였다”며 “하지만 이곳에 와서 중독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받고 정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면서 새 몸과 마음을 갖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또 다른 마약중독 치료자 알비나 알카부지나(41)씨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아들도 이곳에 와서 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린다”고 했다. 또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고생했는데 보청기도 선물해 주시고 예수님 만나 새 삶을 살게 돼 고마울 뿐”이라며 끝내 눈물을 글썽였다. 

 난민이 입주할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나르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라비치(45)씨는 3년 전 우크라이나 내전을 피해 이 마을에 와 교회의 도움으로 생활한다. 교회에서 제공한 소와 돼지를 키우고 비닐하우스에서 오이, 토마토를 재배해 자립을 도모한다. 그는 “교회 도움으로 여기서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며 “아직도 우크라이나 동부에선 총과 대포 소리가 들린다. 전쟁의 참혹함이 얼마나 끔찍한지 말을 못할 정도”라고 했다.

가정주부인 나탈리아 파블라(29)씨는 “6개월 정도 지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3년 넘게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교회 도움이 아니었다면 옷과 집을 제공 받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라마나비치 목사는 “장 선교사 부부는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 현지 목회자들을 돕는다”면서 “그동안 난민들에게 줄 아파트를 자비량으로 빌리고, 사용하지 않는 집들을 수리해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준 사례도 많다. 상처 입은 그들이 주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함께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장 선교사 부부는 1990년부터 이곳에서 활동 중이다. 필리핀과 미국을 거쳐 2000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의 우크라니아 선교사로 파송됐다. 매년 7월 3000~5000명이 참가하는 청소년 페스티벌을 개최해 이 지역 최대의 축제로 만들었다. 한국 목회자들도 이 페스티벌에 참가해 설교 메시지를 전한다. 청소년들의 영적인 변화가 이 나라의 장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장 선교사 부부는 믿고 있다.

거주할 집을 짓고 있는 난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종일 선교사 부부.

우크라이나는 개신교 복음화율이 3% 미만이고 대부분의 국민이 동방정교회 신자다. 개척한 교회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보며 성령께서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앞으로 우크라이나의 선교역사를 모은 기독교박물관을 설립하는 게 부부의 기도제목이다.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상황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내전 중에 있기에 너무나 불안함 중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저희는 복음 전도자가 될 것입니다. 슬라바 보구(하나님께 영광).”

장 선교사는 “휴모테 교회는 저희 선교활동의 샘플교회”라며 “교회와 고아원이 있고 중독재활센터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치유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친 두 사람은 또 다른 우크라이나 난민을 돌보러 자리를 바쁘게 떠났다.

휴모테(우크라이나)=글·사진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