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천 무고' 여성 재판 중 방청석서 야유가 터져나온 까닭

입력 2017-07-06 09:26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부장판사 나상용)는 가수 겸 배우 박유천(31)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허위 고소한 혐의(무고)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송모(24·여)씨에 대해 5일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국참)에 참석한 시민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무죄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송씨가 허위사실을 신고하고 (박씨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송씨가 스스로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허위로 고소했는지 박씨측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약 17시간 동안 열린 재판 내내 송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 막바지 최후진술에서 그는 “당시 너무 혼란스럽고 정신이 없었다. 저는 성폭행 피해자다. 너무 억울하다”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무죄 판결이 나오자 송씨는 변호인과 끌어안은 채 오열했고, 방청석에 있던 여성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장시간 재판 중 한때 법정이 소란해지기도 했다. 검사가 송씨를 신문할 때였다. 송씨를 무고 혐의로 기소한 검찰은 "성폭행 당했다"는 송씨의 주장이 허위임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검사는 송씨가 화장실에서 박유천씨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상황을 언급하며 송씨에게 “허리를 돌려 저항하면 성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다. 그 순간 방청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검사의 질문에 흥분한 방청객 중 다수는 여성이었다. 성폭행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피해자의 '저항' 여부를 잣대로 삼는 '법리'가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된 거라는 비판이 깔려 있었다. 

무죄 판결 이후 온라인에서는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박씨가 성폭행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도 이를 고소한 송씨가 무고죄가 아닐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배우 이진욱(36)씨를 무고한 혐의로 기소된 A씨(33·여)가 지난달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와 같은 상황이다.

법적으로 이는 가능하다. 형법상 무고죄는 남을 형사처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로 고소해야 성립된다. 송씨 측에 따르면 송씨는 성폭행 피해를 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박씨를 고소했다. 고소 내용이 다소 과장됐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 아니고 사실에 기초했다면 무고죄로 볼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이씨를 무고한 혐의로 기소됐던 A씨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의사에 반해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여겼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송씨와 A씨는 재판 전 ‘꽃뱀’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박씨와 이씨가 성폭행 혐의를 벗었으니 고소한 여성들은 당연히 무고죄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박씨를 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첫 번째 신고자인 이모(25·여)씨의 경우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영향도 있었다.

법무법인 평원 김보람 변호사는 “성범죄는 특히 피해자가 밖으로 알릴 용기를 내기 어려운 범죄”라며 “명백한 무고가 아니라면 법원에서 성폭력 관련 무고의 판단을 엄격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명인을 둘러싼 성폭력 무고 논란이 거듭되면서 최근 최호식 전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 성추행 사건에서도 초기에 “여성이 대가를 노린 것 아니냐”는 성급한 반응이 있었다. 최 전 회장이 20대 여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피소되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또 무고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자 이런 의심은 확신으로 이어졌다.

여성단체는 성폭력 사건에 관련된 무고죄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고죄가 너무 넓게 인정되면 성폭력 피해자의 신고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실천여성학을 전공한 강경화씨는 ‘성폭력 피해 여성 무고죄 적용 요인 분석’ 연구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유흥 관련 직업, 전과, 이혼 경력 등으로 피해의 진실성을 판단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의 경우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에 따라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과거 성관계 이력 등이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제한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한 성폭력특례법 일부개정안이 지난해 12월 발의되기도 했다. 개정안은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무고사건은 성폭력범죄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종료되거나 법원의 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수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성폭력범죄와 무고 사건 수사를 분리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개정안 검토보고서도 “두 사건의 증거서류, 증인 등이 동일하므로 분리가 곤란하며 분리가 가능하더라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고소·고발된 성폭력범죄 중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범죄 사건에 대한 혐의없음 처분 비율은 36.17%로 전체사건의 혐의없음 처분 비율(24.86%)에 비해 높았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