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KIA 타이거즈는 올 시즌 최대 위기를 맞았다. NC 다이노스에 3연전을 모두 패하며 공동 선두로 내려 앉았다. 다음에는 여름에 살아난 삼성 라이온즈전에 이어 지옥의 수도권 원정 9연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삼성을 넘으면 팀의 제 1, 2선발을 내세우는 LG 트윈스, 홈런 공장 SK 와이번스를 만나야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약한 불펜을 보유하고 있는 KIA가 2위로 올스타전 브레이크를 맞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KIA가 살아났다. 그것도 활화산 같은 방망이로 우뚝 섰다. 지난 4일에는 SK를 15대 6으로 대파하고 한·미·일 최초 7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KIA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일까. 발단은 NC에 3연패를 한 지난달 25일 저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장 김주찬은 팀 패배 후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잘해왔다. 왜 우리가 쫓겨야 하느냐. 이제 경기를 즐기자”고 했다.
실제 KIA는 2010년 이후 2011년과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것도 각각 4, 5위 턱걸이로 올랐다. 예년에 비해 올해 엄청나게 잘하고 있는 만큼 부담감을 떨치자는 의미였다. KIA 관계자는 5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5일 이후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전에 초조했다면 이젠 한결 여유를 가지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김주찬이 이렇게 선수단에게 이야기를 한 배경이 있다. 바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김주찬은 올해 초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극도의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한때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들 중 타율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6월 들어서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달 12일 부산 원정을 떠나기 전 날 박흥식 타격코치와 조계현 수석코치가 김주찬을 불러 소주잔을 함께 기울었다. 그 때 박 코치는 “이때까지 잘 해왔다. 모든 것을 내려놔라. 조급해 하지도 말라. 올해 좀 안 좋다고 해서 너에 대한 평가가 나빠지지 않는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말에 각성한 김주찬은 이후 전성기 타격감을 회복했다. 실제 개막 후 지난달 12일까지 김주찬의 타율은 0.170에 불과했다. 그런데 양 코치들과의 회동 이후부터 현재까지 타율 0.431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박 코치는 “시즌 중에는 선수들의 실력 향상보다는 멘탈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최근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선수들 간의 믿음이 더 좋아졌다. 이 때문에 최근 팀 타격이 좋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기와 김민식 등 이적생들의 활약도 핵타선 완성에 도움을 줬다. 이명기는 타격에 재능이 있었지만 이적 후 적응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최근 팀 문화에 잘 녹아들며 리드오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김민식도 하위 타선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KIA 관계자는 “보통 상대 투수는 7, 8번 타자를 쉬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김민식이 펑펑 쳐주고 있다”며 “김민식이 팀의 대량 득점에 큰 역할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