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사드’ 이야기 없던 이유… ‘정의용 작전’ 성과?

입력 2017-07-03 09:49 수정 2017-07-03 10:37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의제는 수면 위로 돌출되지 않았다. 사드 의제는 한·미 공동성명 6개 항목에서도 빠졌다. 회담이 이뤄지기 전 우리 측에서 이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다.

양국이 사드 배치를 다루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극비 미국 방문 때문이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는 3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 실장이 지난달 중순 극비리에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고, 한·미 관계의 뇌관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사전에 매듭지었다고 보도했다. 정 실장의 방문은 우리 외교부와 주한미국대사관도 모르게 진행됐다.

정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지난달 1일부터 사흘 간 미국을 공개적으로 방문한 바 있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정 실장은 당시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과 사드 문제를 놓고 깊이 교감했다.

그러나 양국 분위기는 금세 냉랭해졌다. 국방부의 사드발사대 반입 보고 누락 의혹에 이어 청와대가 사드 배치 부지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나서자 미국 측에서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보류하려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폭스뉴스 등의 미국 언론이 이런 내용을 앞다퉈 보도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정 실장은 맥매스터 보좌관과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 보도만 보지 말고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을 보고 판단해달라”고 당부했다. 미국 측은 “한국 정부가 사드배치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발표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9일에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관련 문제로 브리핑했다. 정 실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며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을 분명히 하는 데 필요한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 실장은 지난달 15일을 전후로 우리 외교부와 주한미국대사관에 알리지 않은 극비리 미국 방문에서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맥매스터 보좌관의 집으로 찾아가 포틴저 선임보좌관까지 동석한 ‘마라톤 대화’를 벌였다. 5시간 동안 이어진 긴 대화였다.

정 실장은 펜으로 그림과 도표까지 그려가면서 사드 배치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고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 실장이 설명한 내용은 백악관을 거쳐 미국 의회에도 전달됐다.

사드 배치 문제가 미리 정리되면서 문 대통령도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의회 상·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 속에 미국 측의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맥 손베리 하원 군사위원장은 “사드 배치와 관련한 확인에 감사드린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의용-맥매스터 핫라인은 문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뇌관’으로 꼽혔던 사드 문제를 수월하게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분간 양국 관계에서 중요한 소통 창구가 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