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기내서 ‘장진호 기념사’ 밑줄치며 수정…굉장히 공들였다”

입력 2017-06-29 09:52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현지시간) 미 해병대 국립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참전용사의 흥남철수 사진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첫 일정인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위해 직접 기념사를 수정하며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문 대통령을 수행 중인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8일(현지시간) “오늘 첫 번째 행사를 위해 대통령께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셨다. 아까 비행기 안에서도 직접 기념사 원고를 다시 수정하는 모습을 보이셨는데, 굉장히 공을 들이면서 줄을 치고 긋고 다시 수정하는 그런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는 미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해병대국립박물관에서 진행됐다.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과 로버트 블랙맨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이 문 대통령을 영접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여기부터 왔다”며 인사했고, 넬러 사령관은 “영광스럽다. 대통령님 가족사와 미 해병대 역사가 인연을 맺고 있는 이곳에 오셔서 큰 영광”이라고 했다. 또 “다른 방미 행사도 성공적으로 잘 치르시기 바란다. 한-미 양국 해병대는 형제와 같다. 부르면 언제든 우리는 달려가겠다”고 덧붙였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1일까지 17일간 혹한 속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 1만5000여명과 우리 육군 제7사단 3000여명이 함경남도 장진호 인근을 둘러싼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명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이동한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로 10만여명의 피난민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고, 이 과정은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다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는 '흥남철수 작전'을 통해 부산으로 피난 온 피난민 출신이다. 당시 흥남철수를 가능케 했던 미 해병 1사단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문 대통령도 없었을 것이란 명제가 성립한다.

헌화 행사에는 흥남철수 작전에 참여했던 미 해병대원의 가족들이 참석했다. 이 작전의 지휘관이었던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의 외손자 토머스 퍼거슨 대령에게 문 대통령은 “할아버님 덕분에 흥남철수를 할 수 있었고, 제가 그래서 여기 설 수 있게 됐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포니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씨에게는 “흥남철수가 가능하도록 큰 도움을 줘 감사하다. 그때 9만1000명이 구출됐고, 그 피난민에 우리 부모님이 계셨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인 스티븐 옴스테드 중장에게는 고개를 거의 90도 가까이 숙이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옴스테드 중장은 당시에 처절했던 전투상황을 설명하며 “3일 동안 눈보라가 왔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새벽 1시쯤 눈이 그치고 별이 보이기 시작해 그 별을 보고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그 별을 보고 희망을 찾아서 10배가 넘는 중공군을 뚫고 나와 결국 흥남철수의 계기를 만들어 주셨다”고 답했다.


루니 제독은 ‘한미동맹은 피로 맺어진 관계’란 내용의 서신과 함께 흥남철수 작전에서 피난민 1만4000명을 태운 매러디스 빅토리호의 사진을 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매러디스 빅토리호의 1등 항해사였던 그가 당시 직접 찍은 사진이었다. 문 대통령은 사진을 보며 “여기가 갑판인데”라고 가리키면서 “그 밑에 화물칸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흥남철수 작전 이후 귀국해 수도사가 됐다.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도 헌화 행사에 참석해 문 대통령을 만났다. 그들은 문 대통령에게 “라루 선장이 가톨릭 ‘성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국 가톨릭 교단은 교황청에 라루 선장을 성인으로 추천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40분간 열리기로 돼 있던 이 행사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10분 동안 진행됐다.

◇ 문 대통령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님, 옴스테드 장군님을 비롯한
장진호전투 참전용사 여러분, 흥남철수작전 관계자와 유족 여러분, 
특히 피난민 철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현봉학 박사님의 가족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에 드디어 왔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첫 해외순방의 첫 일정을
이곳에서 시작하게 돼 더욱 뜻이 깊습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 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알몬드 장군의 명령을 받은
故 라루 선장은 단 한 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무기와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무려 14,000명을 태우고
기뢰로 가득한 ‘죽음의 바다’를 건넌 자유와 인권의 항해는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남쪽 바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었습니다.

2년 후, 저는 빅토리 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서,
저는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세계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인 이유입니다.

제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항해도중 12월 24일,
미군들이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그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저는 늘 고마웠습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대한민국은 여러분과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기억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습니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또한 한미동맹은 저의 삶이 그런 것처럼
양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67년 전, 자유와 인권을 향한 빅토리 호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 또한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습니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만,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 변호사님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죽기 전에 통일된 한반도를 꼭 보고 싶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한 그루 산사나무를 심습니다.
산사나무는 별칭이 윈터 킹(Winter King)입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 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라는 크고 알찬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이 50여 분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장진호 참전용사와
흥남철수 관계자, 그리고 유족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6월 28일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