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본 적이 없고 전혀 알지 못했다며 블랙리스트 실행 및 지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자신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33차 공판에서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블랙리스트 실행 및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사직 강요를 지시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은 "문화예술계 인사 명단을 관리한 사실 자체를 재임 중에 알지 못했다"며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으로 근무할 당시 누구에게 보고를 받거나 명단을 본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블랙리스트는 작년에 언론 보도로 처음 들었고 청와대에 배제자 명단이라는 이름도 없었다"며 "보조금과 관련해 각 부처에서 나름대로 기준을 취합한다는 정도는 들었지만 문체부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실장은 국정원에서 만든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 ·일탈 행태 시정 필요'라는 제목의 문서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그는 "국정원 등에서 정보보고가 오면 보고나서 해당 수석에게 보내주거나 파기하는데 하도 많은 문건을 봐서 기억이 안 난다"며 "나이든 게 자랑은 아니지만 며칠 전 일도 잘 기억 안 난다"고 말했다.
특검이 "국정원에서 이런 류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본인 지시에 따른 것이냐"고 묻자, 그는 "아니다. 국정원 자체에서 알아서 한 것이지 제가 시키거나 지시한 건 없었다"며 "이 같은 문서를 문체부에 내려 보낸 적은 없으며 어떤 과정으로 전달됐는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건을 보낸다고 이대로 하라는 실행지시가 아니다. 각 부처 최종 책임은 장관에게 있다. 문체부 장관이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그린 화가를 지목하는 대목에서 '이념편향'을 뜻하는 것인지 묻자, 김 전 실장은 "제가 평가할 수 없다"며 "대통령을 모독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좌익, 좌편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원 배제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구성된 '민간단체보조금 TF' 운영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국고보조금 낭비 및 누수 실태 파악을 한 적은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제가 근무할 당시 문화예술계 좌파 지원 전수조사를 해보라고 말한 적 없다"며 "저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안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태강 당시 문체부 체육국장(현 2차관) 등 문체부 1급 공무원들의 사직 강요와 관련해서는 "실국장 인사는 인사위원회 심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사직서를 낸 분들과 개인적인 안면도 없고 이들이 일을 잘 못한다고 불만을 가진 일도 없다. 사직을 강요할 동기가 없다"고 부인했다.
한편 특검 측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공소장 변경 허가를 지난 26일 신청했고, 김 전 실장 변호인은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구체적으로 듣고 추후 허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민우 인턴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