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론에서 미르재단 관련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비참하다”고 심경을 토로한 사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27일 열린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검찰은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진술조서를 공개했다.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수석은 2015년 11~12월쯤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미르재단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김 전 수석은 “내가 이병기 전 실장에게 직접 들은 말”이라며 “이 전 실장이 미르재단에 대해 걱정을 드러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미르재단이) 별 문제될 게 없고, 더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미르재단에 대한 언론의 의혹 보도가 이어지자 지난해 10월 12일에는 박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참석하는 대책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도 밝혔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박 전 대통령은 그날 “비선실세가 존재하느냐”는 참모진 질문에 “비참합니다”라고 답했다. 김 전 수석은 이 대답을 비선실세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이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경위에 대해서는 “기업인과 만나 윈윈하는 자리였다”며 “최순실씨가 한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찰이 청와대 핵심 수석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실체가 파악됐는데도 그 실체를 시인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실과 달리 대응한 이유를 묻자 김 전 수석은 “시정연설과 JTBC 태블릿PC 보도로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24일 개헌 발표 직후에는 언론이 개헌을 크게 보도하기 시작해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날 저녁에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면서 “전화가 빗발쳤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