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용 제보 조작’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국민의당 '창업주'이자 대선후보였던 안철수 전 공동대표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국민의당의 도덕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사안인 데다, 안 전 대표가 조작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라버렸다. 안 전 대표가 대선 패배 후 물밑에서 재기를 모색하는 와중에 정치생명이 걸린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문준용 특혜채용 의혹’을 집중 제기했던 국민의당은 선거를 나흘 앞둔 지난달 5일 준용씨의 미국 파슨스스쿨 동료 제보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국민의당은 “아버지가 이력서를 내면 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준용씨로부터 들었다”는 녹취파일 등을 근거로 막판 공세를 펼쳤다. 안 전 대표 측도 폭로 하루 전날부터 닷새간 ‘뚜벅이 유세’에 나서는 등 선거캠페인 기조에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던 때였다. 열세에 몰려 있던 선거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제보자의 녹취파일과 카카오톡 문자 등이 모두 조작됐다고 스스로 밝히며 국민의당은 존립기반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당의 지역기반인 호남의 민심 이반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일 조작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제보 조작자' 이유미씨와 이씨가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이준서 전 최고위원 외에 그 윗선의 개입 여부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선 당시 당의 얼굴이었던 안 전 대표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씨가 안 전 대표의 카이스트 대학원 교수 시절 제자인 데다, 이씨가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안 전 대표가 영입한 인사라는 점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당내에서도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2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안 전 대표가 데려온 사람들이 사고를 일으킨 것 아니냐”며 “안 전 대표도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아직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안 전 대표는 과거 당 안팎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면 돌파’를 택하며 고비를 넘었다. 지난해 6월 터진 ‘총선 리베이트 의혹’ 사건 때도 그랬다. 국민의당이 4·13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직후 발생한 위기에서 안 전 대표는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남으로써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박선숙 의원과 김수민 의원이 1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자 안 전 대표는 즉각 이를 ‘박근혜정권의 국민의당 죽이기’로 규정하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안 전 대표는 당시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며 “세간에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의한 기획수사라는 말이 있다.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도 했다. 현재 박 의원 등은 지난 15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 판결만 남겨둔 상태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대선에 출마하며 국회의원직까지 사퇴한 안 전 대표는 당내 공식 직위도 없어 ‘책임의 정치’를 구현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안 전 대표는 대선 패배 후 전국을 돌며 ‘낙선 인사’를 한 이후 공식 행보를 자제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자 관련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빼 달라고 할 정도로 몸을 낮추고 있다.
결국 열쇠는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준용 파일 조작과 관련해 국민의당 지도부를 비롯한 윗선 개입이 있었는지, 안 전 대표가 이를 인지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파일 조작에 가담한 이들이 실무선뿐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책임이 다소 덜어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대선 캠페인 내내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강조했던 안 전 대표에게 이번 사태는 검찰 수사 결과를 떠나 극복하기 어려운 치명타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정치’ 브랜드를 비롯해 안 전 대표가 대선 기간에 기대를 받았던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인’ 이미지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당을 지탱해온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민적 비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여당은 ‘안철수 책임론’을 제기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꼬리가 몸통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통이 꼬리를 움직이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안철수 후보와 당시 책임있는 사람들은 국민 앞에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