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반환 20주년] 민주주의 후퇴… ‘900억 화려한 잔치’ 속 불만 최고조

입력 2017-06-27 08:23 수정 2017-06-27 08:40

다음달 1일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3년 3월 취임 후 처음으로 29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홍콩을 방문한다. 시 주석은 캐리 람 행정장관(행정수반) 당선인의 취임식을 주관하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중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은 10주년 때의 9배에 달하는 9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례 없이 ‘화려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홍콩과 오늘날 홍콩의 가장 큰 차이는 일국양제에 대한 불신의 정도다. 범민주 진영은 외교, 국방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항인치항’(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을 적용한다는 합의가 무너졌다고 비판하고 있다.

홍콩 최대 민주화 시위인 2014년 ‘우산혁명’의 주역인 조슈아 웡(20)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사무총장)은 26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난 20년은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 기간이었다. 홍콩인의 시민권, 참정권이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산혁명 이후로 중국의 내정간섭이 더욱 심해져 일국양제가 일국1.5제가 될까봐 두렵다”고 우려했다.

‘민주주의 상실 20년’ vs ‘식민 해방 20년’

홍콩 민주파 정당 소속 당원들이 26일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에서 중국 정부가 1997년 주권 반환을 기념해 선물한 조각상에 검은 천을 씌우고 '민주자결'을 외치는 모습. 사회민주연합전선 제공


홍콩 주권 반환 20주년을 지켜보는 시선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축제로 보는 시각이다. 영국 식민지 155년 종결일(홍콩이 영국에 할양된 1842년을 기준)을 축하하자는 의견이다. 또 다른 시선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보는 시각이다. 중국의 영향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등이 급격히 후퇴해 홍콩의 특수성을 잃었다는 관점이다. 양 극단의 생각을 지닌 시민들은 대규모 축제와 시위를 각각 준비하고 있다.

26일 범민주파 정당인 데모시스토당과 사회민주연합전선, 인민역량 등은 완차이 골든 바우히니아 광장의 바우히니아 상을 검은 천으로 덮어씌우고 시 주석의 홍콩 방문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조각상은 중국 정부가 1997년 주권 반환을 축하하기 위해 홍콩에 준 선물이다. 상 주변에서는 매일 중국 국기를 게양하는 행사가 열려 중국 관광객이 몰려든다.

범민주파 시민단체 민간인권진선(민진)은 다음달 1일 빅토리아 공원에서부터 시청광장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민진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일국양제는 거짓말”이라며 “중국은 민주적인 방식의 보통선거 실시를 계속 미루고 정치적인 간섭과 압박, 언론 통제를 점차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 매체들은 우산혁명 이후 최대 인파가 거리로 나와 시 주석에 자치를 향한 열망을 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양측의 긴장은 벌써부터 고조됐다. 홍콩 정부는 지난달 범민주 진영이 1일 빅토리아 공원에서 집회를 벌이겠다는 신청을 거부하고 대신 친중파인 홍콩각계경전위원회에 우선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자선단체에 우선권을 준다는 원칙에서였다. 이에 아우녹힌 민진 소집인(위원장)은 26일 “자선과는 관련 없는 친중단체”라며 “아직까지도 집회 허가를 못 받았다”고 밝혔다. 민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원 집결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20년 후 뒤바뀐 입장

홍콩이 다음달 1일로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지 20주년이 된다. 반환을 축하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동시에 반환 뒤 중국때문에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진은 홍콩 태평산에서 바라본 홍콩 시내 전경. 권준협 기자

중국이 현재 생각하는 홍콩의 중요성은 20년 전과 180도 다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과 서방 세계의 ‘연결통로’로서 홍콩의 역할이 이제 빛을 바랬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20년 전처럼 홍콩이 더 이상 돈을 벌어다주는 보물단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의 안보를 해치고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애물단지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홍콩이 자국 내 민주화 시위를 촉발하는 불씨가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산당 서열 3위인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지난달 “중국과 홍콩은 권력을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위임을 기초로 하는 관계”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고도의 자치권을 이용해 중국에 맞서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년 전 중국 입장에서 홍콩의 역할은 중요했다. 중국은 홍콩을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기업들과 교역할 기회를 얻었다. WP에 따르면 97년 홍콩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3%에 불과하다. 중국의 주요 도시인 상하이와 선전 등은 그동안 무역 거점으로 성장해 홍콩의 역할을 대체했다.

반면 홍콩 입장에서 중국의 중요성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홍콩무역발전국(HKTDC)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홍콩의 1위 교역 상대국은 중국이다. 홍콩의 대중국 수출액은 지난해 1조9434억 홍콩달러(약 283조8400억원)로 97년에 비해 282% 증가했다. 홍콩의 총 교역액에서 중국의 비중은 50.8%로 막강해졌다. 현지 통계청에 따르면 홍콩을 찾는 관광객 중 중국인의 규모는 급증했다. 97년 중국 관광객은 전체의 22.1%였지만 지난해는 75.5%에 달했다.

글·사진 권준협 기자, 그래픽 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