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무로 '반려가구' 만드는 시골 목수의 서울 전시

입력 2017-06-26 15:43
이세일 목수가 전남 해남군 삼산면 목신마을 자신의 작업실에서 직접 고안한 '목신말'에 앉아 대패질하는 포즈를 취해보이고 있다. 그가 버려진 나무로 만든 목공예 작품 개인전이 서울 트렁크 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살구나무, 느티나무, 뽕나무, 아카시아 나무, 사스레피 나무, 때죽나무….
마을 뒷산에 간벌한 뒤 버려졌거나 태풍에 쓰러져 뒹굴던 나무들이 가정에서 애지중지 쓰는 생활가구로 탄생한다. 나무 스툴, 나무 쟁반, 커피 그라인더, 소반, 러브 체어…. 난로 안에 들어갈 처지였던 나무는 커피 그라인더로 생명을 얻는다. 땔감으로도 쓰지 못하는 사스레피 나무는 커피콩을 뜨는 커피 스푼(스쿠프)으로 변신한다.

이렇듯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해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는 ‘마이다스의 손’이 있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목신마을의 목수 이세일(47)씨. 마을 입구 들녘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을 최근 찾았다. 양쪽 창에서 비쳐드는 빛으로 작업 도구가 널브러진 작업 공간이 환하고 정감 넘쳤다. 그는 지금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트렁크갤러리에서 ‘목수 이씨의 생각하는 손’전을 갖고 있다. 시골에 사는 목수가 서울에서 전시를 열며 어엿한 목공예 작가로 공식 등극한 셈이다.

비닐하우스 공방에서 일하던 그가 7년 전 새로 마련한 이 작업실도 폐교에서 구한 자재로 지은 것이다. 작업장 구경도 흥미진진하다. 아이들 목마처럼 생긴 ‘목신말(shavinghorse)’은 발로 밟아 밴드를 조임으로써 대패질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다. 버려진 드럼통으로 만든 난로도 있다. 나무를 태워 갈색 톤을 내기 위한 것이다. 주워온 스노보드, 쌀포대와 지게로 뚝딱뚝딱 만든 의자도 있다. 재활용의 세상이다.

커피 스쿠프 하나가 눈에 띤다. 자루 부분에 노란색 줄이 길게 나 있는 게 세련돼 보인다.
“원래 나무에 있던 노란색입니다. 그걸 살린 것이지요. 도시 목수들은 수입 원목을 가지고 기계를 사용해 물건을 만듭니다. 제건 일일이 수작업을 하니 손맛이 있다는 게 다르지요. 그 맛에 정 들어 늘 곁에 두고 싶은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무 옹이, 나무에 난 구멍 등 상처나 흠도 그대로 살린다. 그게 맛이다. 대물림하고 싶도록 사랑 받는 ‘반려가구’를 만드는 게 그의 작업 철학이다. 손맛도 손맛이지만, 창안이 들어간 독특한 디자인과 미감이 이세일 목수가 만든 반려가구의 미덕이다.
쟁반을 보자. 한 땀 한 땀 바늘땀 뜨듯 작은 칼로 나무에 낸 칼땀이 무늬를 내며 독특한 미감을 뿜어낸다.
이세일 목수가 직접 만든 커피 그라인더, 나무 쟁반 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테이블은 폐교에서 얻은 무바닥으로 만는 것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일단 팔아야하니까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손바닥 2개 크기 쟁반 3개를 만드는데 이틀이나 걸린다. 공들인 만큼 가격을 못 받지만 개의치 않는다.

해남 출신인 그는 초등 4학년 때 가족이 이농해 서울살이를 했다. 어쩌다 나무로 불상조각을 하는 일을 배우게 됐다. 그렇게 30대 초반까지  불상 조각을 하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12년 전 귀향했다. 처음엔 돈벌이를 위해 정자만들기 등을 했다. 그러다 생활가구로 돌아섰다.

“돈벌이가 아니라 만들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목수는 대목(집)이 아닌 이상 소목 중에서는 가구 짜는 목수가 최고지요. 저는 (크기에 있어) 그걸 넘어섰어요. 수작업으로만 할 수 있는 더 작은 걸 만들고자 하는 거지요. 목수가 숟가락 깎는 거 보신 적 있나요? 하하.”
버려진 나무로 이세일 작가가 만든 생활 목공예 작품들. 그는 늘 곁에 두고 싶은 '반려가구'를 만드는 게 작업철학이라고 말했다. 트렁크갤러리 제공




결국 목공예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얘기다.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창조에 대한 욕구, 나무 예술가로서의 숨은 기질이 이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저, 옷도 뒤집어 입어요. 보세요, 이 옷. 바꿔서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더디더라도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니 작업복으로 입고 있는 라운드 면 셔츠의 솔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목공예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그렇게 표출되고 있었다. 트렁크갤러리에서 ‘목수 이씨의 생각하는 손 ’전은 막바지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전시는 30일까지. 해남의 행촌미술관에서 같은 전시가 오는 12월 열린다. 해남=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