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에 술상 차리게 한 '엽기 사단장'… 부하들 노예처럼 부려

입력 2017-06-26 15:05 수정 2017-06-26 15:06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뉴시스

현역 육군 사단장이 휘하 군장병들에게 야밤에 술상을 차리게 하고, 폭언·폭행을 일삼으며 사실상 ‘사(私)노비’처럼 취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군인권센터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남 지역 사단장인 A소장이 공관병·운전병 등에게 사적지시·폭언·가혹행위 등 ‘갑질’을 자행했다는 제보를 복수의 제보자들에게서 입수했다”고 밝혔다. 또 “그럼에도 A소장은 수사는커녕 징계위원회에 회부조차 되지 않았다”며 “육군 마피아의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라고 비판했다.

제보에 따르면 A소장은 2015년 11월부터 현재까지 1년 8개월간 사단장으로 재임하면서 장병들을 사실상 노예처럼 부렸다.

지난 3월 30일 술에 취한 A소장은 다음날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공관으로 간부들을 데려와 공관병에게 ‘술상’을 차리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관병이 양주와 과일 등으로 술상을 차리자 A소장은 공관병을 데리고 B중령을 찾으러 갔다. 그런데 B중령이 “복도가 길어서 지친다”고 말하자 A소장은 공관병에게 “복도가 기냐? 짧으냐”라고 질문했다. 공관병이 “조금 긴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A소장은 갑자기 공관병의 목덜미를 두 번 치고 뺨까지 한 대 때렸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야심한 시각에 공관병을 불러내 술상을 차리게 한 것도 문제인데 폭행까지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A소장은 엽기적이고 황당한 가혹행위도 벌였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A소장은 담배를 피울 때 전속부관에게 재떨이를 들고 옆에 서 있게 했다. 회식 때는 전속부관에게 공관으로 가 자신의 사복을 코디해 가져오라고 했는데, 코디가 마음에 안 들면 폭언을 퍼부으며 마음에 들 때까지 돌려보내 새로 코디해오게 시켰다. 전화통화가 끝나면 전속 부관에게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사적인 일에도 장병들이 동원됐다. A소장은 평소 텃밭 관리, 공관 내에 키우는 수십개의 난 관리 등 사적인 용무를 모두 공관병에게 맡겼다. 자신의 대학원 입학시험 준비와 과제를 위한 자료 조사 등은 당번병에게 지시했으며, 민간인과의 사적인 만남이 있을 때면 수시로 관용차와 운전병을 운용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야 이 XXX야” “이 ㄱ새X야” 등 욕설을 퍼부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A소장의 갑질을 참다 못한 제보자 중 한 사람이 전역 후인 지난 5월 폭행 및 사적지시 등 자신이 겪거나 목격했던 피해 사실을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하지만 어떤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임 소장은 “제보된 내용은 제60조 군인 등에 대한 폭행,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그럼에도 문 소장은 수사도 받지 않았고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A소장이 받은 조치는 ‘구두 경고’뿐인데 그 주체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라며 “육사 선배인 장 총장이 후배인 A소장의 비위행위를 덮으려 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육사 마피아들의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로 군의 자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있음을 또 다시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청년들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 복무를 하러 간 것이지 노비 생활을 하려고 젊음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통령도 식판에 밥을 직접 떠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등 권력의 ‘낮은 자세'가 대세인 시대에 군 장성들은 아직도 왕처럼 군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청산 기조에 발 맞춰 A소장을 보직해임하고 장군 공관병, 개인 운전병 제도 등을 즉각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A소장을 수행한 복수 장병을 대상으로 ‘교차 확인’을 마친 내용만 공개했다고 전제하며 “제보자 4명은 전역한 지 길게 1년, 짧게는 수개월이 지났고 부대에 있을 때 서로 자주 보던 사이가 아니라 입을 맞출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