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앞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다음달 '이주'를 시작한다. 6개월 '이주기간'이 끝나면 1~4단지 143개 동을 한꺼번에 허물고 새로 짓는다. 1980년 완공 후 37년이 된 이 아파트에는 현재 5930세대가 살고 있다. 그리고 지난 37년간 하나둘 모여들어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또 새끼를 낳은 길고양이 수백마리의 '거처'이기도 하다.
5930세대가 1만1106세대로 변신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서 이주를 앞두고 지난 22일 '특별한 회의'가 열렸다. 서울 강동구는 둔촌주공아파트 단지 내 길고양이 이주 문제를 놓고 ‘길고양이 생태적 이주를 위한 사전 연구모임’을 가졌다고 26일 밝혔다.
지난해 동물보호센터가 구조한 유실, 유기 동물은 모두 8만 9732마리였다. 1년 전에 비해 9.3% 증가했다. '생태적 이주 연구모임'은 이 대형 단지에서 집단 이주가 시작될 경우 기존 길고양이뿐 아니라 버려지는 '집고양이'도 상당수 발생할 가능성이 커 그 대책을 세우는 자리였다.
이 단지에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의 길고양이는 모두 20만 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오래 된 단지 역사와 초대형 규모로 볼 때 수백마리가 될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이번 모임은 대규모 단지의 재건축 과정에 동물 안전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강동구는 “대규모 단지의 이주·철거로 길고양이의 안전과 유기동물 발생 우려가 한층 커졌다”며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모임에는 길고양이 이주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동물보호단체 ‘케어’, 강동구 동물복지팀, 서울시 동물보호과 등 민·관이 고르게 참여했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저자 이인규 작가와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도 함께 했다.
이들은 앞으로 단지 별로 길고양이 개체수를 파악해 고양이 현황지도를 만들기로 했다. 또 길고양이를 잡아 집고양이로 순화시키는 법 등을 알려주는 세미나도 열 계획이다. 길고양이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전한 이주지역과 입양처도 찾아 나설 예정이다.
강동구는 입주자들이 이주할 때 기르던 동물을 버리고 떠나지 않도록 캠페인을 펼치는 등 행정적인 지원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길고양이의 안전한 이주를 위한 노력은 영화나 출판물로 기록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