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6개월을 끌어온 서울시향 사태가 결말을 향하고 있다. 검찰이 최근 서울시향 사태와 관련한 일련의 고소 사건에 대해 차례차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제 정명훈 전 예술감독, 박현정 전 대표, 사무국 직원들을 둘러싼 명예훼손 고소건만 남은 상태다.
서울시향 사태는 지난 2014년 12월 사무국 소속 직원 17명이 당시 “박현정 대표가 폭언 및 인사전횡을 일삼고 성추행까지 했다”며 발표한 익명 호소문으로 촉발됐다. 박 전 대표가 “직원들의 주장은 음해”라고 반박하는 한편 배후에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있다고 주장, 사태는 진실게임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이후 서울시는 민간 인권 전문가들과 함께 별도의 팀을 꾸려 조사에 착수, 폭언과 성희롱 등 일부 인권침해 사실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표는 서울시가 해임 절차를 밟자 사표를 냈다.
박 전 대표의 사퇴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던 서울시향 사태는 직원들이 접수한 강제추행 사건과 박 전 대표가 제기한 명예훼손 진정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지난 2015년 서울 종로결찰서는 박 전 대표의 강제추행 혐의 등을 조사한 결과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으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대신 서울시향 직원들이 박 전 대표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했으며 그 과정에 정 전 예술감독의 부인 구모씨가 관여됐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뀐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여론 역시 반전됐다. 한국자유연합 등 15개 보수 시민단체로 구성된 ‘박원순시정농단진상조사시민연대’가 정 전 예술감독에 대해 항공료 허위청구·인건비 부당청구를 들어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도 한몫 했다. 2015년말 재계약을 앞뒀던 정 전 예술감독은 10년을 이끌어오던 서울시향을 떠났다. 하지만 서울시향 사태는 정 전 예술감독과 박 전 대표 사이의 명예훼손 맞소송으로 이어지면서 한층 복잡해졌다.
꼬일대로 꼬인 서울시향 사태는 지난해 8월 경찰이 항공권과 보좌역 인건비 횡령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특히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원점 재수사를 천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2월 박 전 대표가 서울시향 직원 3명을 무고 혐의로 고소하는 한편 검사 재배당을 요청한 것은 검찰 수사가 경찰 발표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검찰은 지난 19일 박 전 대표의 성추행 혐의에 대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여성 직원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른 것에 대해서만 폭행으로 인정해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향 직원 3명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무고건에 대해서도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언론이 박 전 대표가 성추행 무혐의 처분 받은 것을 강조함으로써 여론은 박 전 대표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물론 일반 대중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성추행에 대해 박 전 대표가 무혐의를 받긴 했지만 직원들 역시 무고에 대해 무혐의를 받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경찰 수사에서 직원들은 박 전 대표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려고 조작한 가해자로 몰렸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결과를 보면 성추행 사건은 박 전 대표가 술에 취해 서울시향 남자 직원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당시 박 전 대표의 손이 해당 직원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향한 것이다. 직원에겐 박 전 대표의 행동이 성추행으로 느껴질 수 있었고, 박 전 대표 입장에선 성추행 의도가 없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리고 양측 모두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내렸다. 박 전 대표가 성추행 누명을 벗은 것처럼 서울시향 직원들 역시 성추행을 조작하지 않았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박 전 대표가 입수 경위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채 직원들의 단체 카톡방 메시지를 언론에 일부 공개,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언론은 직원들이 박 전 대표 퇴출 작전을 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박 전 대표의 폭행 혐의를 일부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직원들이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어 검찰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정 전 예술감독의 횡령 및 배임 등 고발사건과 관련해 최종 무혐의 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미 지난해 경찰 조사에서도 무혐의 처분이 나왔지만 10개월에 걸친 검찰의 추가 조사 결과에서도 위법행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서울시향 사태와 관련해 남은 고소건의 핵심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직원들의 폭로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나와야 박 전 대표와 정 전 예술감독 사이의 명예훼손 맞소송도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경찰은 서울시향 직원 10명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지난해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서도 조만간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