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난민은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

입력 2017-06-25 00:30 수정 2017-06-25 11:04
사진=유엔난민기구(UNHCR) 제공

“난민은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 유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4년째 활동하고 있는 영화배우 정우성의 난민에 대한 생각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난민은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견디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정 대사는 24일 오후 서울 중구 UNHCR 회의실에서 지난 5~9일 이라크 난민촌을 방문해 난민들과 만났던 경험, 당시 생각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정 대사의 난민촌 방문은 2014년 네팔, 2015년 남수단, 2016년 레바논에 이어 5번째다. 중동 지역 난민촌 방문은 2번째다. 아래부터는 정 대사와의 문답.

난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난민이라는 용어 때문에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난민은 내전 등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이다.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한순간에 난민이 돼 버린 사람이 많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타인과의 교감, 공감의 필요성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서 ‘난민의 상황을 같이 느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아직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기에 각박한 세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가야할 인간으로서 덕목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난민 문제도 있다.”

이라크 난민의 삶에 어떤 난관이 있던가?

“이라크에 있을 때 기온이 43도였다. 한두 달 후는 57도까지 치솟는 무더위가 시작된다. 사실 무더위 하나만으로도 큰 어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선 물과 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물과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지하수도 깊은 곳에 위치해 파내는 데 물자가 필요하다. 전기 공급을 위해서도 물자가 필요하다. 물자가 없는 상황에서 여름을 나는 노약자와 어린이의 삶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고달플지 쉽게 느낄 수 있다. 물이 없으니 빨래를 하는 것도 식수 공급도 어렵다. 한 단면이 얼마나 연쇄적인 어려움을 낳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들의 삶이 보일 거다.”

난민의 정착에 거부감을 지닌 사람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난민은 불가피하게 떠나고 싶지 않은 나라를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난민 대다수는 비호국에 머물거나 평생 살길 원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보호를 원할 뿐이다. 난민들이 가장 희망하는 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 전쟁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면 단순히 더 나은 국가에서 먹고 살겠다고 생각하겠는가. 일제 강점기에 타국에서 떠돌던 조선인의 가장 큰 꿈은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가 내 나라를 잘 살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는가?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는 난민을 ‘이득인가 손실인가’,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민을 왜 도와야 하는가에 이유는 필요 없다.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다. 동정이 아니라 책무다. ‘대한민국은 당연히 도와야 된다’로 돼 있다. 우리와 다른데 왜 도와야 하는지, 어떤 혜택이 되는지 자꾸 가치 기준에 관한 질문을 해서 같은 질문이 맴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1992년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 가입,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해 난민의 지위와 처우를 구체화했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든 분들은 지금 상황에 최선을 다하셔야 된다. 우리는 같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분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나아지게끔 도와야 한다. 하지만 더 여유가 있는 분들한테는 ‘세상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함께 나눠보는 게 어떨까’ 말씀 드리고 싶다. 먹고 살기 힘든데 난민에게도 관심가져야 한다는 것은 강요일 수 있다. 그런 강요는 하고 싶지 않다.”

친선대사로서 무력감을 느낀 적이 있는가?

“무력감을 느꼈을 때는 남수단 이다(Yida) 지역에 갔을 때였다. 당시 비행기 경락고를 음식 배급소로 썼다. 이다 난민촌에는 2만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었다. 식사 배급시간에 몰려든 사람들을 봤을 때 ‘엄청난 일이구나’라고 느꼈다. 실향민과 난민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필요한 물량도 필요한데 세상의 관심은 편협적으로 흘러간다고 느낄 때 무력감을 느꼈다.”

난민 문제에 관심갖고 활동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동정이나 연민인가?

“동정이나 연민은 아니다. 결국 난민 문제는 우리 문제다. ‘남수단은 토지가 굉장히 비옥하다. 기름 저장량이 엄청나다. 재건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엄청나게 도움을 받을 거다.’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와’하고 감탄한다. 그런데 그런 목적으로 사람을 돕는 것은 너무 얄팍하다. 난민 50% 이상이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세상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면 성인이 됐을 때 분명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바뀔 거다. 그렇지 않고 아이들을 방치하면 세상의 또 다른 문제로 돌아올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거다.”

나비드 후세인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 대표(왼쪽)와 정우성 친선대사가 24일 서울 중구 UNHCR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UNHCR 제공


난민이 척박한 상황에도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종합해보면 ‘삶은 계속 돼야 한다’이다. 난민들은 언젠가 이 시련이 끝나고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꿈꾸고 있다. 돌아가서 내 아이에게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굉장히 명확했다. 대부분 변호사, 의사, 기자, 선생님 등이었다. 모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직업군이었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왜 도와야 돼요?’라는 질문을 안 듣게 된다면 친선대사로서 어느 정도 목표를 이룬 거다. UNHCR 등 난민 지원단체가 결국 가장 원하는 것은 세계 평화다. 전쟁과 난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세계 평화의 시대를 원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어려움에 봉착한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그들을 외면하거나 모른척할 수 없다.”

제3회 난민영화제…영화 ‘경계에서’

정 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대한극장에서 개막한 제3회 난민영화제(KOREFF)에도 참석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폴 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에서’(2017)에 내레이터로 참여해 레바논 베카밸리의 비공식 거주지에 살고 있는 하산 가족의 이야기를 전했다. 정 대사는 지난해 폴 우 감독과 레바논 난민촌으로 건너가 난민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 속에 담았다.

제3회 난민영화제 상영작인 니콜라 이바노브스키 감독의 '구원'(2017)과 폴우 감독의 '경계에서'(2017). KOREFF

이라크 모술 탈환 작전이란?

이라크 모술 탈환 작전은 정부군이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로부터 빼앗긴 제2도시 모술을 되찾기 위해 벌이는 전투 작전을 의미한다. IS 최고지도자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2014년 모술을 점령하고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정부군은 지난해 10월부터 IS가 장악한 모술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와 실향민이 발생했다.

권준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