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갑작스런 공포감

입력 2017-06-24 20:10
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C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다. 똑똑하고 야무지며 매사에 반듯하고 순종적인 모범생이었다. 

말썽 한번 부리는 일 없이 자기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나무랄 게 없었다. 반면 C의 한 살 아래 동생은 산만하고 말썽꾸러기였다. 욕심도 많이 부려서 누나 것은 무엇이든 뺏고 욕심을 부렸다. C는 그럴 때 마다 자기 것을 양보하고 동생을 배려하고 보살펴주었다. 

이렇게 또래 보다 조숙하게 자라는 C는 학교에서 조차도 가장 말썽꾸러기 아이와 짝을 해 주고 그 아이를 보살 펴 주는 역할을 하는 믿음직한 선생님의 조력자였다. 이런 C가 부모로서도 때론 안쓰럽게 보였지만 맞벌이를 하며 말썽꾸러기 아들과 C를 함께 돌보아야 하는 부모로서는 C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

C는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젼에서 공포영화를 본 후 잠을 자지 못하고 피를 보거나 붉은 색만 보아도 화들짝 놀래고 엉엉 울며 어찌 할 바를 몰라 하였다. 엄마가 말만하여도 화가 난 목소리 같다며 불안해 했다.

C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부모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랐다. 안심도 시켜보고 야단도 쳐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다음엔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라고 말하며 아이를 위로해 보았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부모의 보살핌 받고 싶은 욕구를 무시하고 모든 걸 동생에게 양보하며 부모의 인정을 받아온 C는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부모의 사랑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 불안이 공포영화의 붉은색, 피에 대한 두려움으로 대체되어 표현 된 것이다. 

이런 C의 불안에 대해 “괜찮아”라는 식으로 다시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도록 하는 위로 보다는 “많이 무섭구나. 힘들지?”라고 아이의 상태를 인정해 주는 한마디가 도움이 된다. 그리고 C 스스로도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며 자기 주장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또 평소에 아이가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읽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치료 받으면서 C는 “엄마, 이럴 때는 괜찮다고만 하시지 말고 그냥 제 손을 꼭 잡아 주세요. 아님 저를 따뜻하게 안아 주시든지요” “동생을 쓰레기 통에 버리고 싶어요” 라고 자신의 감정이나 원하는 바를 부모에게 직접 표현하는 아이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C는 증상이 없어질 뿐 아니라 예전처럼 조숙한 아이가 아니라 어리광도 피우고 욕심도 부리는 아이다운 아이로 변해갔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착하게 자라기를 원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나쁜 것’이라고 은연 중에 암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적정인 감정은 억압하거나 무시하여 마치 느끼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희노애락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며 당연한 것이므로, 특히 분노감, 슬픔,두려움 등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표현해도 된다고 안심 시켜 줘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자신을 존중할 수 없는 아이가 된다.

이 호 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