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들 모두 공모 관계를 부인하나 증거에 의하면 특혜 의사의 결합과 실행 행위가 모두 인정된다." 판결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유라 입학·학사 비리'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23일 최순실씨와 최경희 전 총장을 비롯한 이화여대 관련 교수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형량과 양형 이유를 밝히는 데 머물지 않고 이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꾸지람'이 판결문에 담겼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수정 부장판사)는 23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박영수 특검팀의 구형량은 7년이었다. 최순실씨가 기소된 여러 사건 중 처음 나온 선고였다. 마침 이 날은 최씨의 생일이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에겐 각 징역 2년, 남궁곤 전 입학처장에겐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류철균(필명 이인화) 교수와 이인성 교수는 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원준 교수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경옥 교수는 벌금 800만원, 하정희 순천향대 교수에겐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최씨에 대해 "자녀가 체육특기자로 성공하기 위해선 법과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배려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과 주변 사람이 자신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그릇된 특혜의식이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 마음이라 하기엔 자녀에게 너무나도 많은 불법과 부정을 보여줬고, 급기야 비뚤어진 모정은 결국 자신이 아끼는 자녀마저 공범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또 "최씨의 범행으로 인해 국민과 사회 전체에 준 충격과 허탈감은 그 크기를 헤아리기 어렵고, 누구든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으리란 믿음 대신 '빽도 능력'이란 냉소가 사실일지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생기게 했다"고 질타했다.
최경희 전 총장에게는 "사표(師表)가 돼야 할 대학 교수이자 대학 최고 책임자임에도 사회 유력인사 딸이 지원한 것을 알고는 공명정대한 학사 관리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화여대 관련 교수들이) 대학에 대한 신뢰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공정성이란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교과목을 수강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대한 수강생들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정유라 비리'는 국정농단 사태에서 국민적 공분을 가장 크게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법원은 예상과 달리 최순실, 최경희, 김경숙(전 학장) 등 주범 3명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했고, 나머지 관련자도 유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 적시한 '사회적 부작용'을 감안해 상당한 고심 끝에 유죄 법리를 도출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