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플피디아] 노인들은 왜 ‘실버’ 대신 ‘시니어’를 선호할까

입력 2017-06-22 16:56
2016년 5월 14일 서울 중구 청계천 오간수교 수변무대에서 열린 시니어 모델 패션쇼에서 박양자(91·왼쪽) 할머니가 런웨이를 밟고 있다. 뉴시스

실버(silver)는 노인을 비유한 표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은발로 바뀌는 노년층을 통칭할 때 이 표현을 사용한다. 실버타운, 실버산업, 실버보험, 실버푸드가 대표적이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의 브랜드 명칭에 실버가 붙으면 노년층 전용 상품으로 볼 수 있다. 고령화 사회가 가속되면서 실버를 사용하거나 응용한 표현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노년층은 실버보다 시니어(senior)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1. 실버와 시니어의 차이

실버를 직역하면 은(銀).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멜라닌 생산량이 줄어든다. 이로 인해 색소세포의 결핍 또는 소실로 털이 하얗게 센다. 신체에서 가장 밀집하게 돋아난 털인 머리카락도 예외는 아니다. 흑발이든 금발이든 노년으로 갈수록 은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은발은 백발을 미화한 표현. 노년층을 비유할 때 실버를 붙이는 이유는 이런 신체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시니어의 의미는 연장자 또는 상급자다. 사전적 의미에서 노인만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에겐 시니어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상급생, 또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년을 의미한다. 직장에서는 선임, 스포츠에서는 주니어와 베테랑 사이를 부를 때 사용할 수 있다. 프랑스어권에서 50세 이상, 또는 막 은퇴한 사람에게 이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년층보다 중장년층에 가까운 의미다.

2. 노년층은 왜 시니어를 선호하는가

노인을 그대로 풀이하면 ‘늙은 사람’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약해지는 신체적 특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노년층에서는 ‘노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다. 노인 관련 산업에 실버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이유는 그래서다. 하지만 최근 노년층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다’는 의미를 가진 실버라는 표현마저 부정적으로 여긴다. 신체적 특성보다는 살아온 삶의 경력과 연륜이 강조되는 시니어로 불리길 원하고 있다.

실버보다 시니어를 사용한 기관 기업 단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91세 박양자 할머니 등 중장년‧노년층 모델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뉴시니어라이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노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시니어기술창업센터는 실버를 대신해 시니어를 명칭으로 사용한 사례다.

조윤호 뉴시니어라이프 상임고문은 “노년층에서 노인, 실버는 물론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경력과 연륜을 강조할 수 있는 표현으로 시니어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픽사베이 제공

3. 고령화 사회의 역설

노년층의 희망에 따라 노인에서 실버로, 실버에서 시니어로 변화되고 있는 표현은 가속화되는 고령화 사회의 역설이다. 통용되는 표현은 사회적 인식의 결과다. 노년층이 늘어날수록 실버보다 시니어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표현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한국은 고령화 사회다. 이미 2000년(노인 인구 7.2%)부터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 사회는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를 말한다.  행정자치부가 지난달 발표한 주민등록상 인구 통계에서 65세 이상 노인은 713만2426명로 전체 인구의 13.8%를 차지했다. 불과 17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대수명의 경우 2015년 통계청 집계를 기준으로 평균 82.1세로, 10년 사이에 4년 가까이 늘었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실버와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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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