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워싱턴 발언’을 놓고 “위험한 발상”이란 비판이 제기된 가운데, "미국에 그 정도 말도 못하느냐"는 반론이 정치권에서 고개를 들었다. '문정인 비판론'이 오히려 한·미동맹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옹호론'은 여권을 넘어 야당에서도 나오는 상황이다.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 지나친 저자세로 일관하는 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해법을 주도적으로 제안해야 할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반론의 최전선에 나선 이는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였다.
박지원 전 대표는 21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 아침’에 출연해 “문정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미국의 페리 전 국방장관, 어제 한국에서 연설한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장의 발언과 같은 내용”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가 지난 16일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의 워싱턴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페리 전 장관의 ‘선(先) 핵 동결, 후(後) 한·미 군사훈련 축소 및 중단’ 발언과 일맥상통한다는 설명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통’ 측근인 하스 외교협회장도 20일 한국고등교육재단 특별강연에서 “북한 핵 동결이나 핵 사찰을 놓고 외교적 협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한·미 간 물밑조율이 이뤄진 듯한 이런 발언들을 근거로 “문 특보 발언은 상당히 계산된 발언으로, 한·미 정상회담 타결의 예고편”이라며 “문 특보의 워싱턴 발언은 옳았다. 시기와 장소가 적절치 못했다고 했던 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까지 언급했다. 앞서 페이스북에 “문 특보 발언은 내용이 옳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략적으로 부적절했다”고 평가한 것을 정정한 거였다.
문 특보의 방미에 동행한 김종대 정의당 의원도 가세했다. 김 의원은 20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문정인 선생의 말을 갖고 국내에서 ‘한·미동맹에 균열을 초래한다’며 마녀사냥에 신이 났다. 그 무지몽매함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더 새롭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말할 게 아니라면 변덕스럽고 충동적이어서 미국에서도 골칫덩어리인 트럼프를 왜 만나야 하느냐”면서 “문정인 선생 발언이 서울에서 논란이 되는 동안 정작 미국 친구들은 트럼프의 좌충우돌 성격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런데 워싱턴이 서울에 싸늘하다고? 미국에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하느냐.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맹세라도 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약간이라도 다른 말을 하면 미국이 싫어할까봐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 있다”며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말하면 소화가 안되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두려워 청와대마저 소심해진다면 한·미 정상회담은 아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도 성명을 통해 “주권국가의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국익 관점에서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은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언정 비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문 특보의 발언과 행보는 지극히 정상적인 외교활동의 일환이지, 논란이 될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평련은 더불어민주당 내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지지그룹으로,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해 의원 20여명이 소속돼 있다.
민평련은 자유한국당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민평련은 “외교에 실패하고 북핵과 미사일 위협을 증가시켜 온 전임 정부 책임자와 자유한국당에서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한국당은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호들갑 떨 것이 아니라 오랜 친구이자 혈맹인 한·미 양국 사이의 진정한 국익 교집합이 뭔지 고민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했다.
이어 “문 특보 발언은 사드 배치를 불러온 북핵 사태를 해결하려면 박근혜정부가 실패한 강경 일변도 전략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기초하면서 장기적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