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서 슈퍼모델이 된 그녀, 마리 말렉

입력 2017-06-21 07:49

그녀는 뉴욕의 슈퍼모델이다. 또 DJ이고, 배우여서 연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관심은 내전에 시달리는 고향 사람들을 돕는 일이다. 남수단 난민에서 뉴욕의 슈퍼모델이 된 마리 말렉. 영국 BBC 방송은 20일(현지시간) 그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우리는 40년 넘게 전쟁을 해 왔고 지금도 계속 전쟁을 고집하고 있다.” 

고향을 말할 때 이렇게 설명하는 그녀는 남수단 와우에서 태어났다. 내전으로 많은 이들이 신음하고 있는 곳이다. 재무부 장관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아래서 비교적 풍족하게 자랐지만, 전쟁은 마리의 집까지 덮쳤다.


그는 “꽤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학교에 다녔고 집에는 먹을 게 많았다. 행복한 아이였다”고 과거 한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하지만 5살 때 군인들이 집에 급습해 들어오면서 행복은 깨졌다. “북아랍 군인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군인들에게 끌려간 아버지는 몇 주 후 크게 다치고 직업도 잃은 상태로 나타났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전쟁의 극심해지자 딸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길 원했던 마리의 어머니는 결단을 내렸다. 딸들을 남수단 밖으로 피신시키기로 했다. 아버지가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몰래 세 딸을 데리고 이집트 난민캠프로 도망쳤다.

난민캠프에서 살던 마리는 자선단체의 후원 덕에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착한 뉴저지주 뉴어크는 마약, 폭력, 사창가 등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마리는 그곳을 수단에 있는 집보다 더 무서운 땅으로 기억했다. 주변에선 “저 이상한 애는 누구야?” “크고 새까매” “어디에서 온 거야?” 같은 말이 마리에게 늘 들려 왔다. 그런 말을 들어도 대꾸하기란 불가능했다.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마리 말렉 인스타그램 캡처

여러 난관을 이겨내고 마리는 마침내 뉴욕의 슈퍼모델이 됐다. 과거는 잊히지 않았다. 오히려 슈퍼모델이라는 직업을 이용해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남수단 사람들을 쉴 새 없이 지원하고 있다. 마리는 “모든 사람을 돕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며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런 마리의 모습은 어머니를 닮았다.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남수단 내전이 아직 마리의 집까지 덮치지 않았을 때, 어머니는 피난민들을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뒀다. 마리는 인터뷰에서 “우리 집은 부상자와 병자, 여자, 아이들로 가득한 병원 같았다”고 말했다.


마리는 교육이 남수단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남수단 성인의 73%가 읽고 쓸 줄 모르며, 여성은 84%로 더 심하다. 심지어 공무원의 42%는 초등 교육 이상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남수단 어린이 교육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구 “스탠드 포 에듀케이션”을 만들었다. 마리는 인스타그램에 “아이들은 반드시 아이들이어야 한다. 학교에 갈 수 있어야 하고, 공부를 위한 도움도 받아야 한다. 교육은 위기와 가난의 시대에 꼭 필요한 열쇠”라고 썼다. 마리는 이런 활동을 하며 유엔에 초청되기도 했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