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 유지 항암치료는 3개월을 주기로 돌아가며 주기의 마지막에는 고용량 항암과 척수검사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9차 중 4차 치료. 4차는 구토, 탈모 등 부작용이 많아 환우가족 사이에서 ‘마의 4차’로도 불린다. 인영이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동안 1번 이상 토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병원에서, 호텔에서 2번 분수처럼 토를 쏟아냈다. 고용량 항암을 맞은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베갯잇에는 빠진 머리카락이 묻어 나왔다.
마스크
병원에 가면 3명 모두 마스크를 쓴다. 병원생활을 오래하면서 마스크가 원래 목적 외에도 표정을 감출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척수주사의 공포를 알았는지 인영이는 허리주사 맞으러 검사실로 가자고 하자 침대 난간을 잡고 울면서 버텼다. 기다리는 간호사 앞에서 아내와 내 얼굴은 금세 울 표정이 됐지만 마스크로 감췄다. 어르고 달래 검사실에 들어와 웅크리고 누워 떨고있는 인영이를 본다. 아빠는 마스크를 코끝으로 치켜 올렸다.
모래놀이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2가지는 아빠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과 인영이 장난감 사주는 것일테다. 인영이가 어린이날부터 갖고 싶다 조르는 뽀로로 스쿨버스는 한달 째 '배송 중'이다. 잊을 만하면 “엄마 인터넷으로 시켰는데 왜 안 오지?”라고 물어보는 인영이에게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러게. 이상하네.”
그런 아내가 척수주사를 씩씩하게 맞고 나온 인영이를 위해 병원 앞 신세계백화점으로 아빠를 급파했다. 인영이가 갖고 싶었던 모래놀이를 인터넷가보다 무려 1만4000원 비싸게 주고 사는 걸 허락했다.
인영이는 허리주사가 아팠냐는 물음에 “숫자 백만큼 아팠다”고 답했다. 교수님 진료실 책상에 통증 강도를 표시하는 1에서 10까지 그림을 본 모양이다. 아빠는 100만큼 아픔을 견딘 인영이에게 뽀로로 스쿨버스도 직구해줄 생각이다.
감사
이 병은 길고 고된 싸움이다. 2년9개월의 긴 치료기간도 그렇지만 재발의 공포는 마음 한 켠을 떠나지 않는다. 지난 3차 척수검사에서 인영이는 척수강 내에 이상세포가 1개 발견됐다. 5개까지는 정상으로 본다지만 이번 검사에서 이상세포가 1개보다 더 늘어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오후에 나온 검사 결과는 0. 긴 투병기간동안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