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故 윤소정은 타고난 배우 하지만 노력파였다”

입력 2017-06-18 16:25
서울 강남구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공동취재단

“윤소정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배우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배우였다.”

 지난 16일 패혈증으로 타계한 배우 윤소정(73)씨에 대해 연극계는 이렇게 회고했다. 50년 넘게 연극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활동했지만 연극은 고인의 배우인생에서 뿌리이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분야다. 17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고 있는 동료 및 선·후배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966년 극단 자유의 입단 동기인 배우 박정자(75)씨는 “불과 2~3주전에 배우 손숙 윤석화 김성녀, 연출가 손진책, 프로듀서 박명성 등과 함께 전남 해남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건강했던 소정이가 이렇게 갑자기 가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소정이에겐 늘 마음의 빚이 있었다. 2010년 연극 ‘33개의 변주곡’은 원래 내가 캐스팅 돼서 연습하던 작품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가 포기하면서 소정이가 급하게 투입됐다. 당시 미국에 있던 소정이에게 전화로 부탁하자 극본을 보지도 않고 승낙했다. 소정이는 그런 사람이었다”면서 “그런데 이 작품이 워낙 어려운데다 공연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된 소정이가 무리한 탓에 대상포진이 걸리고 말았다. 내가 소정이에게 못된 짓을 한 거다. 소정이에게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친분이 두터웠던 배우 김성녀(67) 국립창극단 예술감독도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소정 언니가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손숙, 송도순 씨와 함께 문병갔다. 무균실 밖에서 ‘언니 눈 떠’라고 말했다. 언니가 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멍하고 먹먹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 윤소정(오른쪽)이 출연한 국립극단의 ‘어머니’. 배우 이호재(왼쪽)에는 평생 14편의 작품에서 연인 또는 부부로 나왔다. 국립극단 제공

 1973년 ‘초분’에서 처음 호흡을 맞춘 이래 지난해 국립극단의 ‘어머니’까지 무려 연극 14편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이호재(76)씨는 아예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과 ‘무대 위 부부’로 불릴 만큼 각별했던 이호재씨는 “생각도 못한 일이라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고인의 부군인 배우 오현경(81)씨와 연극 ‘봄날’(7월 28일~8월 6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을 앞둔 연출가 이성열(55) 백수광부 대표는 “윤 선생님의 갑작스런 타계로 쇼크를 받으신 오현경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된다. 오 선생님이 오랜 암 투병 끝에 회복됐다곤 하지만 늘 힘들어하셨다”고 우려했다.

 연극계 관계자들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했던 그의 성격, 후배에게는 각별했던 그의 씀씀이, 노력파였던 그의 연기열정에 대해 추억했다. 박명성(54)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은 “윤 선생님은 매우 쿨한 성격이지만 후배들을 잘 챙기는 분이었다. 그래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고 말했고, 연출가 김광보(53) 서울시극단 단장은 “윤 선생님은 소녀같은 순수함이 있는 배우였다. 일상의 그런 아름다움이 작업에 들어가면 진지함과 더해져 큰 힘을 발휘했다”며 “연출가가 까마득한 후배라도 선배로서의 권위보다 연출가의 지시를 열심히 따르려는 배우였다”고 밝혔다.

 연극 ‘첼로’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배장화 배홍련’ ‘강철’에서 고인과 함께했던 연출가 한태숙(57)씨는 “윤 선생님은 나이가 들어도 그로테스크한 매력과 여성적인 매력이 공존하는 독특한 배우였다. 무대에서 집중력이 뛰어났고, 현장을 존중하는 철학을 가진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 선생님이 정말 재능이 없었던 게 있는데, 바로 노래였다. 음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노래를 못해서 예전에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연습할 때 서로 고생하면서도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막상 본공연에서는 윤 선생님이 노련한 연기로 노래의 부족함을 많이 감췄다”고 덧붙였다.  

 평론가 출신인 김윤철(68)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윤 선생님에 대해 늘 타고난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국립극단의 ‘어머니’에서 연습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선천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부단히 노력하는 배우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 배우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본을 외우는가 하면 너무 열심히 연습하다가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면서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높이 평가받던 분이 떠난 것은 연극계의 큰 손실이다”고 추모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