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 끊겨 하늘나라 간 아빠에게 딸이 쓴 편지 "나 지켜봐 줄 거지?"

입력 2017-06-17 00:01

“하늘에서도 나 잘 지켜봐 줄 거지? 여기서는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지난 8일 경남 양산시 한 고층 아파트 외벽에서 도색 작업하던 중 휴대전화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입주민이 밧줄을 자르는 바람에 바닥 아래로 추락해 숨진 김모(46)씨가 경남 김해의 한 납골당에 안치됐다.

숨진 김씨는 20여년 전 결혼해 고2, 중2, 유치원생, 27개월 등 딸 4명과 초등 5학년 아들을 둔 5남매의 가장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 씨의 둘째 딸은 하늘나라로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며 평소 아껴온 분홍색 편지지에 직접 편지를 써서 납골당 함에 넣어뒀다.

다음은 둘째딸 편지 전문이다.

아빠 이 편지지는 내가 정말 아끼는 건데 아빠한테 쓰는 거면 아빠를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는 거겠지? 아빠! 난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빈자리도 크게 느껴질 테지만 지금은 왠지 내 옆에 누워서 팔 주물러 달라 할 것 같고, 주말에 아빠 일 쉬는 날엔 밥 차려 달라 할 것 같고, 화장실 문 벌컥 열고 들어가면 아빠가 변기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

너무 갑자기 아빠가 내 곁을 떠나 버려서 그 전에 했던 행동들이 너무 후회스럽기만 하고 좀 힘들고 당황스러워.

하늘에서도 나 잘 지켜봐 줄 거지? 밑에서 우리 가족 잘 살 거고 나랑 언니가 아빠 역할 도맡아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아빠만큼은 못하겠지만 엄마도 우리가 잘 책임질게. 여기서는 너무 고생하면서 살았으니까 올라가서는 편하게 아프지 말고 있어!!

나 남자친구 생기면 아빠한테 먼저 1번으로 데리고 갈게. 아빠가 멋진지 잘 봐줘. 꼭 기다려. 다음에 갈 땐 아빠가 좋아하는 술, 닭발, 엄마가 만들어준 카레 꼭 가져갈게. 그거 먹을 거라고 그 때 많이 먹으려고 굶고 있지 말고 친할아버지랑 밥 잘 챙겨먹고 있어. 알았지?

우리 이제 으쌰으쌰해서 잘 살게.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엄마, 할머니·할아버지·아빠한테 가면 한 번씩 꼭 안아드려. 우리 독수리 오남매들 땜에 고생 많이 하셨을 거야. 아빠! 우리 독수리 오남매들이랑 엄마 먹여 살린다고 고생 많이 해 줘서 고마워♡

아빠 얼굴, 목소리 꼭 기억할게. 아 그리고 아빠.. 내가 팔 못 주물러주고 아빠 보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보면 내가 팔 백 만 번 주물러 드릴게 ㅎㅎ 아빠. 사랑해요 ♡ 자주 보러 갈께! 진짜 많이 사랑해요♡



김 씨의 납골함에는 아내 권씨가 직접 쓴 캘리그라피 액자도 놓여있다. 그는 “사랑하는 내 남편,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넷째 아들은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과 손수 쓴 그림편지를 만들었다. 편지에는 ‘사랑해요, 아빠는 너무 멋져요. 아빠를 너무 사랑해요. I love you. 나는 아빠가 좋아요'라고 썼다.

27개월 된 막내는 집에서 아빠랑 함께 가지고 놀던 자동차 장난감 3개를 아빠에게 선물했다.

아내 권 씨는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마음과 성금을 보내주면서 격려와 용기를 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다섯 남매를 씩씩하게 잘 키울 수 있도록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

김 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네이버 카페 '웅상이야기'와 '러브양산맘'에서는 유족을 돕는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전국에서 김 씨 가족을 돕겠다는 문의가 잇따르자 양산 경찰서도 전담인력(청문감사관실 박경석 경사 055-392-0394)를 배치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