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사망 265일 만에 나온 경찰청장 사과

입력 2017-06-16 15:29 수정 2017-06-16 16:36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윈회 발족식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을 사과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이철성 경찰청장이 고(故)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사과했다. 백씨를 쓰러뜨렸던 경찰 살수차에 대해 “일반 집회에 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청장은 16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13층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그동안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한 박종철·이한열님 등 (6·10항쟁) 희생자,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시위에서 유명을 달리한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그러면서 발언을 멈추고 단상 옆으로 이동해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절제된 가운데 행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일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앞으로 경찰은 일반 집회시위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며 “사용 요건 또한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하겠다. 이런 내용을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해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3일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고쳤다. 이 병원은 백씨가 생전 입원했던 곳이다. 백씨의 사인을 ‘병사(病死)’에서 ‘외인사(外因死)’로 수정했다. 이런 사실을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밝혔다. 경찰청장 차원의 사과는 서울대병원의 발표 하루 만에, 백씨가 사망하고 265일 만에 나왔다.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경찰의 수장은 강신명 전 청장이었다. 백씨는 뇌수술을 받고 연명 치료를 받으며 317일간 투병하다 지난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기록했다. 서울대 의대생들이 비판 성명을 내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대병원은 백 교수를 직위해제했다.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 수정은 진단서를 신경외과 전공의가 병원의료윤리위원회의 수정권고를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사망진단서를 고치면서 사인을 ‘직접사인 급성신부전-중간사인 패혈증-선행사인 외상성경막하출혈’에서 ‘직접사인 심폐기능정지-중간사인 급성신부전증-선행사인 급성경막하출혈’로 바꿨다.

뉴시스

◇ 이하 이철성 경찰청장 모두발언 전문

오늘 존경하는 박경서 위원장님을 비롯한 사회 각 분야에 최고의 식견과 덕망을 갖춘 위원님들을 모시고, 경찰개혁위원회를 발족하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먼저, 바쁜 일정에도 위원직을 흔쾌히 수락해주신 위원님들께 경찰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의 인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기대가 높습니다. 경찰을 아끼는 많은 분들이 더 과감한 개혁과 보다 빠른 변화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6월 9일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즈음하여 경찰인권센터에 있는 박종철 열사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경찰의 인권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하겠다는 다짐도 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그간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신 박종철님, 이한열님 등 희생자분들과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님과 유가족분들게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찰의 공권력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절제된 가운데 행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경찰은 일반 집회시위 현장에는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습니다. 사용요건 또한 최대한 엄격하게 제한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하여 철저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오늘 경찰개혁위 발족을 계기로 과거의 잘못과 아픔이 재발되지 않도록 인권경찰로 거듭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도 드립니다.

경찰은 국민 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국민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경찰의 존재 이유와 역할은 무엇인지,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경찰은 무엇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경찰 활동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의 틀을 뛰어넘어 국민의 시각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