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4분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언이 끝나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야 의원들은 연단으로 향하는 문 대통령에게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예우’는 갖췄지만 박수는 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앞줄에 앉은 일부 야당 의원들과도 악수한 뒤 연단에 올랐다. 사상 처음 실시되는 대통령의 추경예산안 시정연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 국민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딱딱한 연설체 문장보다는 ‘감성적’ 접근을 통해 일자리 추경 관련 국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문 대통령은 청년들의 고통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실직과 카드빚으로 근심하던 한 청년은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서 ‘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할게요’라고 썼다”며 “그 보도를 보며 모든 의원들이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30분간의 연설 도중 총 16번의 박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고달픈 하루가 매일매일 계속되고 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맞서는 것이 국민들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하자 회의장에서 첫 번째 박수가 터져나왔다. 의원들은 “추경에는 지난 대선에서 각 당이 내놓은 공통공약을 최대한 반영했다” “청년일자리에 정부와 국회가 함께 팔 걷어부치고 나서달라” 등 국회와의 협력·협치를 강조한 대목에서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파워포인트(PPT)를 활용한 프리젠테이션도 새로운 시도였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 중간중간 22장의 PPT 슬라이드를 활용해 주목도를 높였다.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장면에는 두 손을 모은 여성 취업준비생의 사진이 화면에 잡혔고, 추경 관련 국민제안 건수 1만4196건 가운데 일자리 관련 제안이 8051건으로 가장 많았다는 통계표도 PPT를 통해 한 눈에 전달됐다.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오후 2시 34분까지 계속됐다. 연설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일자리’(44회)와 ‘청년’(33회)이었다. 이번 추경예산안 편성의 강조점이 그대로 묻어난 연설문이었다.
한국당은 본회의를 보이콧하지는 않았지만 “야당무시 일방통행, 인사참사 사과하라” “인사실패 협치포기, 문재인정부 각성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단말기 앞에 붙였다. 문 대통령이 ‘인사 5대원칙'을 어겼다는 불만과 함께 이날 한국당을 제외하고 여야 3당이 추경안 심사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여야 의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대통령이 중앙통로를 지나가며 여당 의원들과 악수하는 동안 기립해있던 한국당 의원들은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중앙통로 쪽 여당 의원들과 악수를 마친 문 대통령이 한국당 의원 쪽으로 다가가자 정진석·서청원 의원 등 한국당 의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문 대통령과 인사를 나눴다.
백상진 권중혁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