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은 없었다. DNA나 지문 증거도 없었다. "저 사람이 범인"이라는 목격자 증언만 있었다. 이 증언이 한 남성에게 19년 징역형을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그의 감옥살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17년 만에 그와 ‘똑같이’ 생긴 다른 남성의 사진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강도죄로 징역 19년형이 선고돼 복역하다 '도플갱어'처럼 똑같이 생긴 다른 남성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17년 만에 무죄로 미국인 남성의 이야기를 BBC 방송 등 영어권 언론이 11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캔사스 출신의 리차드 앤서니 존스는 1999년 발생한 강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 별다른 물증은 없고 목격자 증언만 있었는데, 재판부는 그에게 19년 징역형을 내렸다.
존스는 혐의를 부인하며 수차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계속되는 기각에 점차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항의가 거절당했다. 험난한 여정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낱 같은 희망이 찾아왔다. 존스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리키’라는 남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동료 수감자에게 들었다. 2015년 존스는 잘못된 판결로 수감 중인 이들을 돕는 단체 ‘중서부 무죄 프로젝트’ 조사원들에게 ‘리키’에 대해 말했다. 리키의 말을 믿고 수소문에 나선 이 단체는 마침내 '도플갱어' 남성의 사진을 찾아냈다. 존스는 “그의 사진을 봤을 때 직감이 왔다”고 말했다.
존스는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며 이 남성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언론 캔사스시티스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행운이라 믿지 않는다. 축복을 받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자 법원은 존스의 항소를 받아들였고, 사건 발생 당시 존스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목격자들이 존스와 사진 속 남성을 구분하지 못하겠다고 진술하면서 존스는 17년 만에 석방됐다. 외모 때문에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거의 똑같은' 외모를 가진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그를 범인으로 단정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판사는 존스를 수감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무죄 프로젝트' 조사원들은 사진 속 남성이 존스를 섬뜩할 정도로 닮았을 뿐 아니라 범행이 벌어졌던 캔사스 주 캔사스시티 근처에 산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에 반해 존스는 캔사스시티 경계를 가로질러 미주리주에 살고 있었다.
존스의 변호사들 또한 공원에서 사건이 발생할 당시 존스는 여자친구 및 그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또 17년 전 경찰의 신분확인 절차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존스는 캔사스시티스타와의 인터뷰에서 바깥세상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중이며 자녀들에게 돌아올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