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소리를 한지 60년이 됐네요. 60년 했어도 득음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제 소리에 만족을 못하게 됩니다.”
중요무형문화재 23호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안숙선(68) 명창이 올해 소리 인생 60년을 맞았다. 9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 명창은 “예전만큼 힘이나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좋은 소리를 내려면 예전보다 더 연습을 많이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1949년 전북 남원의 국악 세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인간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진 후 그의 집안에서는 대금, 판소리, 가야금 등 여러 분야에서 인간문화재가 배출됐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한 그는 8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남원의 애기명창’으로 주목받았으며 서울로 올라와 김소희 박봉술 정광수 등 명창들의 문하에 판소리 다섯 바탕을 배웠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주역을 도맡았으며, 1986년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완창해 큰 주목을 받았다. 곱고 단아한 용모, 매력이 넘치는 성음, 정확한 가사 전달과 재치 넘치며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어렸을 때 어른들의 소리를 곧잘 따라서 했어요.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무대에 서기 시작했죠. 하지만 그때는 판소리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립창극단에 들어간 이후 여러 무대에 서면서 판소리의 깊은 맛과 정신을 깨달았습니다. ”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가 된 그는 그동안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현재 남원 춘향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 외에 다양한 무대에 서는 등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쉴 줄을 모른다. 그가 최근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2014년부터 국립국악원에서 만들어오고 있는 ‘작은 창극’ 시리즈다. 그는 국립국악원의 작은 창극 ‘토끼타령’의 명창으로 오는 22일 일본 도쿄와 오사카 무대에도 오를 예정이다.
“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훨씬 대중성이 있습니다. 최근 창극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그 뿌리인 판소리를 확실히 지켜나갔으면 좋겠어요.”
2015년부터 시작된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에도 첼리스트 정명화와 함께 ‘예술 거장’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또하나의 프로젝트다. 그는 지리산 기슭 전북 남원시 비전마을, 전촌마을 등에서 열리는 ‘동편제마을 국악 거리축제’를 이끌고 있으며 정명화는 강원 평창군 계촌마을에서 열리는 ‘클래식 거리축제’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두 축제에서 3년째 협연 무대를 가지고 있다.
“국악이나 클래식이나 처음엔 어렵다고 생각되지만 계속 접할수록 금방 동화됩니다. 올해가 3년째인데 참여자와 관람객 모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명화 선생과도 협연 무대를 종종 가지고 있는데요. 사실 3년전 처음 만났을 땐 어색했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맞추다 보니 어느새 호흡이 잘 맞더라구요. 판소리와 클래식의 만남을 관객들도 좋아해 주시구요.”
예술가로서 많은 것을 누리고 경험한 그지만 머지 않은 시기에 꼭 해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 바로 판소리 모노드라마를 만들어 출연하는 것이다. “예전에 소극장에서 배우 윤석화씨의 모노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요. 너무 멋지더라고요. 판소리로 그런 모노드라마를 해보고 싶어요. 여기에 장구도 치고, 춤도 추고, 정가도 부르면서 드라마를 이끌어 보고 싶네요.”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