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을 하던 30대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버스기사에게 1심과 2심 재판부가 완전히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1심은 버스기사가 잘못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기사가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1초'도 안 되는 갑작스런 상황이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고는 지난해 3월9일 오후 9시52분 서울 동대문구의 왕복 6차로 있는 버스중앙차로에서 벌어졌다. 무단횡단을 하던 김모(36)씨가 최모(52)씨의 버스에 치어 숨졌다. 최씨는 1차로인 버스전용차로에서 시속 50㎞로 운행하고 있었고, 김씨는 편도 3차로에서 1차로 방향으로 무단횡단을 하다 변을 당했다. 최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전방주시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사고 당시 김씨가 무단횡단하던 도로 2차로에는 여러 차량이 줄지어 정지한 상태였다. 최씨는 멈춰 서 있던 차들 사이에서 갑자기 1차로 튀어나온 김씨를 보고 급제동했으나 결국 치어 숨지게 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전방좌우를 살피면서 보행자가 도로에 있는지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 역시 최씨가 무단횡단하던 김씨를 발견할 수 있었던 시점이 충돌 지점에서 약 35~42m 떨어져 있었을 때라는 점을 들어 과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주행속도가 50㎞인 버스의 경우 정지가능거리가 약 30m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부(부장판사 조휴옥)는 원심을 파기하고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가 차량 사이로 무단횡단을 하면서 최씨의 시야에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씨가 옆차선을 제외하고는 교통이 원활한 상태였던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숨진 김씨의 아내는 당시 남편을 따라 차도에 내려섰다가 도로에 차량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무단횡단을 단념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최씨가 야간에 이 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60㎞를 준수하면서 시속 약 45~48㎞로 운행하고 있었으며 특별히 주의가 분산될 만한 행동을 한 정황이 없다는 점도 짚었다. 또 차내 블랙박스 분석 결과를 토대로 최씨가 김씨를 발견한 뒤 제동장치를 조작하더라도 충돌을 피하기 어려웠다고 봤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35~42m 앞에서 무단횡단하는 김씨의 모습이 0.5초 나타났으나 이내 차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김씨의 모습이 다시 영상에 나타난 뒤 충돌이 발생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0.967초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비록 3차로를 횡단하는 모습이 잠시 나타나지만 사건 발생 시각이 야간인 점, 2차로에 차량들이 정지해 있어 최씨의 시야를 부분적으로 가렸으며 김씨가 빠르게 뛰어 도로를 가로지른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가 3차로만 주시하고 있었다고 해도 김씨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은 0.5초에 불과하며 그는 반대방향도 주시해야 했다"면서 "최씨는 사고 발생시각보다 약 0.967초 전에야 비로소 김씨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인지 반응시간인 0.7~1초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