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사춘기 반항, 부모가 원인?

입력 2017-06-09 07:25 수정 2017-06-09 07:26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J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중 1부터 갑자기 반항이 심해지고 가족들과는 말도 안하고 걸핏하면 짜증만 냈다.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공부도 하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귀가가 늦었다. 부모님과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그도 그럴것이 어려서부터 J는 식구들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엄마, 아빠는 모두 명문대를 졸업해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오신 분들이다. 다섯 살 위인 언니는 언제나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공부 잘하는 착한 딸이었다. 

하지만 J는 친구들만 좋아해 밖으로 나돌고 덜렁거리는 성격이어서 ‘미운 오리’ 취급 을 받고 자랐다. 엄마는 사소한 일도 엄마의 결정대로 따르도록 했고 따라주지 않을 때는 호되게 야단을 쳤다. ‘엄마는 경험이 많으니 엄마만 따르면 된다’라고 주입하면서 치밀하게 아이들을 통제했다. 전형적인 헬리콥터 맘이었다. 

J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인정받아 보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사춘기인 중학교 1학년이 되면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결정을 마음대로만 하는 엄마’에 대해 불만이 생겨 반항하기 시작했다.

J 부모님은 J가 문제라며 병원에 왔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아는 J의 언니였다. 언니를 면담해보니 말 잘 듣고 모범생으로 자란 언니 또한 엄마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았다. 어려서부터 옷 하나 입는 것, 책 고르는 것 등을 모두 엄마가 결정해왔다. 그리고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모든 면에서 부모의 기대가 크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엄마가 너무 강하고 완벽해 보여 거스를 수가 없었다. 엄마 말을 잘 듣고 부모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가 원하는 의과대학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실상 열심히 공부해야 할 고3이 되어서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라고 생각했다.

J는 그나마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보려고 반항도 하고 ‘자율’을 향한 몸부림을 하고 있었지만 ‘모범생 언니’는 그런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엄마가 원하는 의과대학에 가려고 삼수, 사수를 거듭하면서 이십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담을 하면서 J의 반항을 ‘자기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부모는 J 언니가 그토록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대입에서는 번번히 실패한 원인도 알게 됐다. 독서실에는 가 있었지만 그건 엄마 눈치 보기 싫어서 피해 갔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니 집중해서 공부하기는 힘들고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도 큰 딸아이가 부모가 정해준 안전한 길을 걸어왔지만 내적인 동기나 열정이 없었던 터라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이 쉽게 무너졌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큰아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J가 다시 겪게 하지 않으려고 J 입장에서 아이의 소망과 꿈을 이해하려 했다. 그러면서 반항만 하던 J는 이제 남자 친구를 엄마에게 소개 할 정도로 엄마와 사이가 좋아졌다. 안전감을 찾은 J는 이제 디자이너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