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문 전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 청탁과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세력에 전달된 지원‧출연금 사이의 대가성 여부를 입증할 첫 번째 퍼즐조각이 끼워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8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문 전 이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 전 이사장이 보건복지부 조모 국장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사실상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문 전 이사장은 직원을 통해 기금운용본부에 압력을 행사했고, 독립성을 보장하는 국민연금공단의 개별의결권 행사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또 “문 전 이사장이 연금 분야 전문가면서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을 통해 국민연금공단에 영향력을 행사해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했고, 국민연금기금에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손해를 초래한 점에서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문 전 이사장은 박근혜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임했던 지난해 7월 산하 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지난 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 기소됐다. 홍 전 본부장은 문 전 이사장의 지시를 받고 합병 찬성 의결권을 행사해 국민연금공단에 1388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히고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 8549억원의 이익을 취하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특검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 청탁과 지원‧출연금의 대가성 여부를 입증할 연결고리로 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할 경우 양사 주식 지분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조정되고, 그 결과 삼성그룹 순환 출자 구조에서 정점에 있는 삼성전자 주식까지 삼킬 수 있다는 것이 특검팀의 주장이었다.
특검팀은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사이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핵심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중형 선고가 필요하다”며 문 전 이사장과 홍 전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다만 “문 전 이사장이 잘못을 자책하고 있다. 문 전 이사장이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측면도 일부 있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홍 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피해액을 산정할 수 없다”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가 아닌 업무상 배임죄로 보고 유죄를 인정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