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축구에도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올해 안에 설립될 것으로 보인다.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라스테이 호텔에서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총회가 열렸다. FIFPro는 부당한 처우를 받는 전 세계 각국의 축구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다. 1965년 설립돼 네덜란드 호프도르프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65개국의 선수협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테오 판 세겔렌 FIFPro 사무총장은 “구단과 조직, 선수간의 경쟁 없이는 축구의 발전도 없다. 국제적인 레벨에서 우리가 선수, 연맹, 구단 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축구는 글로벌 스포츠가 되고 있다. 축구시장에서 아시아는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이며 앞으로도 성장 할 것”이라며 “한국은 아시아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FIFA, 선수, 연맹 간의 알찬 대화를 통해 더욱 성장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세겔렌 총장은 FIFPro의 목표가 “구단과 선수가 서로 협조하고 강해지기 위함”이라며 “1차 목표는 대화, 2차 목표는 구단과 선수간의 문제를 중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한국은 FIFPro 승인을 위한 정식 후보가 될 거다. 오는 12월 첫째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전 세계 총회 때 확정된다”고 설명했다.
FIFPro 코리아의 임원으로는 K리그 클래식 인천과 대전에서 뛰었던 김한섭이 회장을, 수원 삼성에서 은퇴한 곽희주가 이사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김한섭은 “K리그 35년 역사에서 지도자협회, 에이전트도 노조가 있는데 선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없었다. 그동안 선수들에게 불합리한 처사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단과 선수의 균형 발전이 가능한데 그동안 선수들은 구단이나 감독에게 무언의 압박을 많이 받아왔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는 구단의 불합리한 처사도 많았다”고 밝혔다.
김한섭은 “우리나라 정치가 부패한지 그동안 잘 몰랐지만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 프로축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구단 내 입지가 좁아서 불리한 선수들이 많다”는 생각을 전했다. 이어 “현역 때 승부조작 사건 이후 선수들이 뭉치기 시작한 것 같다. 오로지 선수만 당하는 고통이 너무 힘들었다. 구체적으로 FIFPro와 함께 여러 일들을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고민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한섭은 아직 FIFPro 코리아에 가입하려는 현역 선수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초 알려진 192명 이상의 현역 및 은퇴선수들이 가입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곽희주는 카타르 프로축구 알와크라에서 활약할 때 FIFPro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카타르에서 연봉을 받지 못했는데 FIFPro가 보내준 문서 한 장 덕분에 해결됐다. 카타르에서 수원 삼성으로 오지 못할 뻔 했는데, 그 때도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곽희주는 “선수 때는 나서서 조직을 만드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은퇴한 선수 중에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후배들을 위해 길잡이 역할하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데 나쁜 게 아니라 선수들에게 좋은 단체임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단체다. 우리 선수들도 이제는 나서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FIFPro 설립을 돕고 있는 박지훈 변호사는 “2013년부터 선수협 설립 작업을 시작했다. 선수들의 부당한 처우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다”며 “프로야구 선수협을 보면서 불이익 당할까봐 주저했는데 은퇴선수들이 후배들을 위해 뛰면서 의기투합했다. 연맹 선수협의회가 아닌 선수들이 만든 자발적인 단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제조직인 FIFPro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출범 이후에도 수월한 운영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내놨다.
박 변호사는 “공식적으로 우리는 노조의 역할을 지향한다. 정식 노조전환도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차후 가입인원이 늘어날 것이다. 그동안 은밀한 접촉을 해왔다”며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어려웠다. 우리의 뜻에 공감해주신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