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택시’ '말 안 거는 옷가게'… 일본의 색다른 '친절'

입력 2017-06-08 16:15
‘손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 이런 '원칙'을 앞세워 영업하는 택시회사가 있다. ‘고객에게 옷을 권하지 않습니다'라고 홍보하는 옷가게도 있다. 일본에서 이 같은 ‘무언(無言) 접객'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는 세태를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의류브랜드 ‘어반리서치’는 지난달 19일부터 22개 매장에 시범적으로 ‘말 걸 필요 없음’ 가방을 뒀다. 이 푸른색 가방을 매고 쇼핑을 하면 점원이 와서 옷을 권할까봐 긴장할 필요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옷을 둘러볼 수 있다. 손님이 구매하거나 입어보고 싶은 옷을 넣는 가방을 원래 매장에 비치해두는데, 색을 구분해 ‘무언 가방’을 만든 것이다.

“내 속도에 맞춰 쇼핑을 하고 싶다” “점원이 다가오면 긴장된다” 등의 고객 불만이 ‘무언 서비스’ 도입의 계기였다. 사람들이 인터넷 쇼핑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직원들과 접촉할 필요가 없어서’라는 점도 고려했다.

결과도 좋았다. 손님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쇼핑을 해서 좋고, 점원은 도움을 요청하는 고객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80%에 이르렀다.

다만 “그럼 점원이 하는 일은 무엇이냐”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고객을 가려내는 점원의 대응능력을 키우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도 나온다. 회사는 여론의 추이를 보고 서비스 확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마이니치신문 웹사이트 캡처

교토에 본사를 둔 운수회사 미야코택시는 지난 3월 말부터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먼저 말 걸지 않는 ‘침묵 택시’ 10대를 전국 최초로 시범 운행하고 있다. 택시 조수석 뒤에는 “기사가 말 거는 것을 자제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택시기사는 첫 인사를 할 때, 목적지를 물을 때, 계산할 때, 승객의 질문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 2월 아이디어 발표회에서 영업 담당자가 “경기가 안 좋다”며 말을 걸어오는 택시기사에게 맞장구치는 게 귀찮았던 경험을 얘기한 것이 이 택시를 도입하게 된 계기였다. 최근에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손님이 많다는 것도 고려했다.

NHK가 집중 취재한 결과 이 역시 승객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퇴근길에 택시를 탄 한 승객은 목적지를 말한 후 내릴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릴 때 기자가 감상을 묻자 “차 안에서 회사 업무회의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호의적으로 평가를 내렸다.

그렇다고 택시가 쌀쌀맞은 건 아니다. 손님이 말을 걸면 ‘침묵 택시’의 운전사는 상냥하게 응대한다. 한 손님이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을 묻자 운전사는 맛있다고 자부하는 라면 가게 들이 몰려있는 교토의 인기 식당가를 소개했다. 승객은 “기분에 따라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이쪽에서 묻자 바로 상냥하게 대답해줘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무언 서비스’는 고객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걸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접객 서비스라는 평이 많지만,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희박해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