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1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부산국민참여운동본부 발대식에서 한 말이었다. ‘달변가’ 노 전 대통령에게 친구 문재인은 떠듬떠듬 말하는 ‘눌변가’였다.
지난달 9일 그 눌변가는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초미의 관심사였고 국민은 그 말에 울고 웃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한 달, 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① “내일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5월 9일)
지난달 9일 오후 8시,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종료됐다. 대통령 당선 소감은 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아직 당선이 확정되기 전부터 광화문에선 “문재인 대통령”이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이미 누가 다음 대통령인지 알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광화문 광장에서 당선 소감을 밝혔다.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는 구상의 첫걸음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일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며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뽑아준 지지층을 위한 개혁뿐 아니라 국민의 절반이 넘는 비지지층에도 귀를 기울이고 다가가는 통합을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안희정 충남지사,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도 단상에 올라 문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했다. 특히 안 지사는 문 대통령에게 기습 뽀뽀를 해 해외에서까지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②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5월 10일)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문장은 5년을 기다린 끝에 문 대통령 취임사에서 다시 살아났다.
문 대통령은 ‘5·9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다음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통해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대선후보가 아닌 대통령의 신분으로 읽은 문장이었다.
이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기회, 과정, 결과가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 자신의 책무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문장이었다.
③ “제 옷은 제가 벗겠습니다.” (5월 11일)
청와대였다. 대통령이 있었고, 청와대 직원도 함께였다. 대통령은 겉옷을 벗으려 했고, 청와대 직원은 익숙한 듯 이를 도와주려 했다. 하지만 과한 의전이 익숙하지 않은 대통령은 말했다. “제 옷은 제가 벗겠습니다.” 직원은 난감해 했지만 입가엔 미소를 띠었다.
지난달 11일 청와대 신임 수석비서관과의 오찬장에서의 일이었다. 많은 국민은 이를 보며 흐뭇해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벗은 건 옷이 아니라 귄위주의였다.
④ “광주 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5월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합창이 아닌 제창이었다. 비표를 받는 대신 누구나 기본 검색 절차만 거친 뒤 입장했다. 현직 대통령이 참석했다. 지난해와 달라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은 그렇게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새 정부가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광주 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다”고 말해 5·18 유공자와 유가족의 울분을 풀어줬다.
국민일보와 모바일리서치업체 오픈서베이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 4명 중 3명은 헌법 전문에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포함시키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문 대통령은 1980년 5월 계엄군의 총탄에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37·여)씨가 ‘슬픈 생일’이라는 추모사를 마치자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예정에 없이 단상에 올라가 김씨를 안아주고 위로했다. 김씨는 “아빠가 안아준 것처럼 어깨가 넓게 느껴졌다”며 “어깨에 기대 목 놓아 울고 싶었다”고 말했다.
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5월 19일)
50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 토마스 헬렌은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말했다. 기자에겐 질문이 일이다. 이 때문에 종종 질문으로 상대를 당혹스럽게 하거나 또 괴롭히기도 한다.
그런 기자들이 역으로 질문에 당황해 했다. 지난달 19일 청와대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서 문 대통령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선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을 향해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불과 몇 분 전 “질문과 답변 시간은 예정돼 있지 않다”고 공지한 청와대 관계자도, 그렇게 알고 있던 기자들도 당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기자들에게 질문을 거의 받지 않았다. 받더라도 사전에 질문지를 취합해 검토한 후 답변에 나섰다. 문 대통령의 '질문'은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⑥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5월 23일)
지난달 23일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8주기 추도식. ‘노무현의 친구’ 문 대통령은 추도사를 읽으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의 깊은 우정을 알았기에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곧바로 이번 추도식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자리임을 밝혔다. 그는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아뵙겠다”며 “그때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달라”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라며 지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⑦ “받아쓰기, 이제 필요 없습니다.” (5월 25일)
지난달 25일 처음 개최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자료는 정리해 배포할 테니 여기서는 열심히 논의에 집중해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전 정부의 ‘불통 리더십’을 상징하던 받아쓰기에서 벗어나 ‘격의 없는 소통’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리 정해진 결론은 없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지시사항에 이견을 말씀드릴 수 있느냐”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질문에도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라며 “황당한 이야기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받아쓰기, 정해진 결론, 계급장이 없는 ‘3무(無) 회의' 원칙이 마련됐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열기로 한 수보회의 일정과 관련해서는 “월요일 오전에 하면 일요일에 일이 많아지니 오후에 합시다. 목요일은 오전에 하고”라며 청와대 비서진을 배려했다.
한편 커피광으로 알려진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앞두고 “커피는 어디에 있느냐?”며 커피를 찾았다. 이에 먼저 와 커피를 마시던 참석자들은 커피를 대신 타주는 대신 “저기 있습니다”라고 답했고, 문 대통령은 직접 커피를 내려 마셨다.
⑧ “야당 의원들과 국민께 양해를 부탁합니다" (5월 29일)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은 문재인정부에 대해 “굉장히 잘한다. 솔직한 말씀으로 무섭다”라고 평가했다. 야당 의원의 ‘경계’이자 문 대통령으로선 ‘극찬’이었다. 하지만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등 내각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고위공직자 인선 불가 기준인 5대 비리(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29일 야권과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문 대통령은 “그것(5대 비리 배제)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공약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논란은 준비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야당 의원들과 국민들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또 “구체적인 인사 기준을 마련해 공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⑨ “파독광부, 청계천 여공… 그것이 애국입니다” (6월 6일)
키워드는 “애국”이었다.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무려 22번 “애국”을 언급했다.
항일의병, 광복군, 한국전쟁 참전군인, 베트남 참전용사, 파독광부와 간호사부터 청계천 다락방의 여공, 5·18과 6월 항쟁의 시민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과 유가족까지 언급하며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다”고 문 대통령은 말했다. 이념·세대 갈등을 벗어나 국민통합의 의지를 담은 '애국'이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대한민국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공헌하신 분들께서, 바로 그 애국으로 대한민국을 통합하는 데 앞장서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현실은 여전하다”며 독립운동 후손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⑩ “대통령으로서 명령인데, 신혼여행 가세요” (6월 7일)
지난 3월 화재 현장에서 창문으로 뻗어 나오는 불길을 몸으로 막고 주민을 대피시킨 영웅들이 있었다. 최길수, 김성수 구조대원. 이 중 최 대원은 당시 결혼을 앞뒀지만 부상 당해 혼인을 미뤘다. 소식을 들은 모교 후배들이 성금 2000만원을 모아 전달했는데, 최 대원은 늦춰진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는 대신 이 돈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냈다.
지난 7일 서울 용산소방서를 찾은 문 대통령은 최 대원을 칭찬하면서도 “신혼여행을 안 간 건 잘못했다”며 “대통령 명령인데 신혼여행을 가라”고 말했다. “서장님이 휴가를 내 달라”고 당부를 덧붙였다. 최송섭 소방서장은 “명!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라며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최일선에서 하는 소방관들, 화재를 비롯한 재난 현장, 거기서 구조를 기다리는 국민에게는 소방관들이야말로 국가 그 자체”라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인력과 장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소방청 독립,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등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