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롤 해프닝' 이정미 "시간없어 가위로 머리 잘랐다"

입력 2017-06-08 11:03 수정 2017-06-08 11:17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3월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주재하고 있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7일 고려대에서 열린 취임기념특강에서 탄핵 정국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모교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초빙된 그는 지난 3월 13일 퇴임한 뒤부터 탄핵심판과 관련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날 강연에선 '헌법재판의 시각으로 본 우리의 삶과 비전'이라는 강의 주제로 300여명의 학생에게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의의를 설명했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탄핵심판 과정에 대해 "한 나라의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것이 슬프지 않다면 법률가로서 인간의 마음이 마비된 것"이라며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될 슬픈 역사"라고 밝혔다. 

"외압과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기록과 헌법정신에만 기초해 결정을 내렸다"면서 당시 결연한 의지를 전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3월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주재, 박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선고한 뒤 퇴정하고 있다.

헌법 정신도 되짚었다. 그는 "선진국보다 한참 늦은 1988년에야 창설됐지만, 지금까지 840건의 법률에 대해 위헌 또는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며 "권위주의 정권 때 만든 법률, 남존여비 사상에 기초한 법률 등을 하나하나 바로 잡았다"고 강조했다.

"헌법은 그동안 법전 속에 묻혀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잠자는 숲속 공주의 볼에 키스해 잠을 깨우는 왕자처럼 우아하게 묻혀있던 헌법 정신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곳"이라면서 헌재의 존재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탄핵심판 당시 받았던 압박을 공개하며 사법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재판결정에 불만을 품고 신상 털기나 협박 등을 일삼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인민재판과 같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지난 3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이 헤어롤을 풀지 못한채 출근하고 있다.



탄핵 선고 당일 헤어롤을 머리에 단채 출근한 일에 대해선 "미용실 갈 시간조차 없어 집에서 직접 가위로 머리를 자를 정도였다"며 "헤어롤을 못 뺀 것도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고려대 법대 출신의 첫 여성 사법고시 합격자이자, 역대 두 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이다. 그는 "정당 해산 심판 때는 큰 애가 고3이었고, 탄핵 심판 때는 작은 애가 고3이었다. 밤새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라면서 가족에게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박세원 인턴기자 sewon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