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 "트럼프가 러시아 스캔들 '수사중단' 요구"… '핵폭탄급' 폭로

입력 2017-06-08 07:58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핵폭탄급' 발언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을 직접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이 발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에 해당한다.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미국 대통령 3명이 탄핵 위기에 몰렸던 사유는 모두 사법방해였다.

코미 전 국장은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앞두고 정보위 웹사이트에 공개한 '모두발언문'을 통해 지난 2월 14일 백악관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모두발언'은 코미 전 국장의 요청에 따라 의회 증언 하루 전날 전격 공개됐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난달 9일 해임되기 전까지 회동 3차례와 전화통화 6차례 등 총 9차례 접촉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둘이 만난 2월 14일 회동에서 "마이클 플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이 사건을 놔줄 수 있기를(let this go), 플린을 놔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사건을 놔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수사에서 손을 떼 달라고 요청했다고 코미 전 국장은 공개했다.

지난해 미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캠프와의 내통 의혹의 '몸통'으로 간주되는 플린 전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해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압'이 있었다는 미 언론의 보도를 공식으로 확인한 것이다. 미 언론은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백악관에서 코미 전 국장과 단둘이 만났을 때 플린에 대한 수사중단을 요구했으나, 코미 전 국장이 이를 거절하고 대화 내용을 메모로 남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코미 전 국장은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만 답했다면서 "이 사건을 놔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다"며 수사중단 요구를 거절했음을 강조했다. 코미 전 국장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탄핵사유에 해당하는 '사법 방해'라는 게 중론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이 급속히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코미 전 국장은 이날 공개한 '모두 발언'을 통해 1월 첫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나는 충성심이 필요하다. 충성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발언 이후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나는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면서 "대통령은 나에게 정직함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답하자 대통령이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정직한 충성심'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코미 전 국장은 지난 4월 11일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당신에게 매우 매우 의리가 있기(loyal) 때문에 우리에게 '그러한 일'(that thing)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은 "그가 말하는 '그러한 일'에 대답하거나 (무슨 뜻인지) 물어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국 주요 언론은 일제히 긴급뉴스와 속보를 전하며 사태의 향배에 주목했다. 한결 같이 "트럼프 대통령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됐다"며 취임 5개월 만에 닥친 최대 위기를 전했다. CNN 인터넷판은 '코미의 폭탄선언'(Comey's Bombshell)이라는 헤드라인에 '눈이 튀어나올 만한'(eye popping) 증언이란 표현을 썼다. 

CNN 선임 에디터 크리스 칠리자는 "코미가 핵무장했다(went nuclear)"고 이번 사태를 규정했다. 칠리자 에디터는 "코미의 증언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공들여온 해명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면서 "트럼프의 대통령직이 그동안에도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풍랑이 몰아치는 물 위로 나가게 됐다"고 예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미의 증언이 트럼프의 대통령직을 '끊임없이 괴롭힐 수 있다'(could haunt)고 지적했다. 코미의 발언이 '눈을 못 떼게 하는'(riveting) 증언이 됐다고 한 WP는 인터넷판에서 증언의 주요 대목을 노란색 하이라이트로 표시한 뒤 정치부 기자들의 세밀한 해석을 달았다. 

미 전국지 USA투데이는 코미의 증언에 '극적인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평가한 뒤 플린 수사에 대한 '외압'(press) 부분이 큰 문제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사유인 사법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와 코미의 대화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처럼 중대한 탄핵 사유에 들어맞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코미 전 국장이 실제로 청문회에서 이 같은 증언을 육성으로 내놓게 되면, 사법방해 논란이 의회 안팎에서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회전문지 '더 힐'과 정치매체 '애틀랜틱'은 미리 나온 코미의 증언이 '극적인 디테일(세부묘사)'을 완벽하게 그려놓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측이 이에 반박하기가 만만찮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BBC 방송도 코미의 증언을 브레이킹 뉴스로 전하면서 미국민들이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을 더 신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