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프랑스로 입양된 30대 한인 의사가 프랑스 의회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인공은 스위스 로잔대학병원 신경방사선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조아킴 손-포르제(34·한국명 손재덕)씨. 손-포르제씨는 4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스위스-리히텐슈타인 재외국민 지역구 후보로 나와 64.93% 득표율을 기록하며 15.93%에 그친 대중운동연합 소속 현역 의원을 크게 앞질렀다.
투표율이 25%를 넘으면 결선투표를 치르지 않아도 되지만, 1차 투표 투표율은 20.7%에 그쳐 한 번 더 투표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이변이 없는 한 18일 결선투표에서 손-포르제씨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하원은 2010년부터 전체 의석 577석 중 11석을 재외국민 선거구로 배정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프랑스 국민의 뜻을 의회에 반영할 대표자를 직접 선출하자는 취지다. 북유럽, 캐나다-미국, 중남미, 북서아프리카, 스위스-리히텐슈타인 등 11개 해외 권역으로 나뉜다.
손-포르제씨는 에마뉘엘 마크롱(39) 프랑스 대통령이 창당한 ‘레퓌블리크 앙마르슈(공화국 전진)’ 소속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그에게 정계 입문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스위스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자유에 대한 그(마크롱 대통령)의 믿음뿐 아니라 개인의 해방과 평등한 기회를 위해 그가 쏟아왔던 노력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화려한 정계 입문을 목전에 둔 손-포르제씨의 인생 역정도 기구하고 감동적이다. 스위스 언론에 따르면 그는 1983년 7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서울의 한 골목에 버려졌다. 젖먹이의 배냇저고리엔 4월 15일생이라고 적힌 쪽지만 들어 있었다.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그를 발견해 그날 밤을 경찰서에서 보냈다. 다음날 아기는 보육원에 보내졌고 이어 프랑스로 입양됐다.
랑그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게 된 손-포르제씨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했지만 과학과 음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술을 배우면서 인체의 급소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무술 스승 앙리 플레와의 만남을 계기로 뇌 과학을 연구하게 됐고 2008년 의학 공부를 위해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하프시코드(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 연주자이기도 한 그는 스위스 제네바 빅토리아홀 대공연장에서 단독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공연 때마다 붉은색 도장에 새긴 한국 이름 ‘손재덕’을 종이에 찍어 사인한 뒤 청중에게 선물한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