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14년차 배우의 이토록 순수한 연기열정 [인터뷰]

입력 2017-06-06 09:30
제이스타즈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연스럽다. 꾸밈이 없다. 배우 김지석(본명 김보석·36)이 지닌 독보적인 매력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그는 굳이 자신을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건강함은 그가 뿜어내는 긍정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연기를 할 때만큼은 눈빛부터 달라진다. 연산군을 연기한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특히 그랬다. 개구쟁이 같기만 하던 평소 얼굴에서 장난기와 웃음기가 싹 가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광기에 휩싸인 연산군에 십분 녹아든 탓이다. 그의 연기인생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 해도 무방하다.

“제가 처음 연산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갸우뚱하셨어요. ‘네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저희 부모님이 제일 의아해하시더라고요. ‘너에게 연산의 모습이 있을 수 있을까’ 하시면서요. 저도 부담감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놓칠 수 없었죠.”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석은 “30대 남자배우로서 연산 캐릭터를 맡게 되는 건 있을까 말까한 기회”라며 “나로서는 당연히 오케이(OK)였다. 저의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연산이라는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부모님과의 연락 차단이었다. “굉장히 일차원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했어요. 원래 우리집은 원래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하거든요. 워낙 화목한 편이라서. 근데 ‘역적’ 촬영에 들어가면서는 부모님께 전화하지 마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게라도 연산과 비슷한 환경 안에 나를 우겨넣어보려 했죠.”


‘뇌섹남’답게 배경지식 공부도 철저히 했다. 김지석은 “대본보다 책을 더 많이 본 것 같다”면서 “연산군에 대한 직간접적인 사료 외에도 다양한 서적들이 많더라. 책을 통해 ‘연산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고민해보곤 했다”고 털어놨다.

비록 역사 속 실존 인물이지만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다뤄진 캐릭터이기에 좀 더 새롭게 해석해내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결과는 만족스러워요. 단순히 기능적인 악으로 소모되지 않고 30회에 걸친 긴 호흡을 통해 다른 면모를 보여드렸다는 게 제일 뿌듯해요. 스스로 자부심도 느껴지고요.”

부작용이 한 가지 있었다. 한동안 극 중 캐릭터에 빠져 산 터라 실생활에까지 그 영향이 미친 것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괜스레 예민해지고 감정기복도 심해졌다. 밖에 나가기 싫어 집에서 ‘혼술’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tvN ‘뇌섹시대-문제적남자’(이하 ‘문남’) 촬영장에서조차 마냥 밝게 행동할 수가 없었다.

“‘문남’ 멤버들을 자주 만나니까 제일 잘 아는데 제게 ‘변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감정이 극과 극을 달린다고. 나중에는 ‘문남’에서의 제 롤을 충분히 못해 미안하더라고요. 고맙게도 다들 이해해주셨어요. 그런 게 장수 프로그램의 의리가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김지석은 “그만큼 ‘역적’이라는 작품이 내게 간절했던 것 같다”며 “나를 그렇게 몰아붙여서 내 자신에 생채기가 좀 나더라도 이것만큼은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2004년 MBC 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로 데뷔한 김지석은 ‘미우나 고우나’(KBS1·2007) ‘추노’(KBS2·2010) ‘로맨스가 필요해’(tvN·2012) ‘발칙하게 고고’(KBS2·2015) ‘또! 오해영’(tvN·2016)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꾸준히 작품 활동만 해오던 그가 처음 고정출연한 예능프로그램이 ‘문남’이었다. 예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2015년 말 이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받았다. “드라마 외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포맷 자체가 굉장히 새롭더라고요. 저는 원래 모르면 모른다 얘기하는 스타일인데 PD님이 그 캐릭터를 잘 살려주신 것 같아요.”

김지석은 “예능을 하다보니까 종종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면 ‘김지석이 저런 연기도 가능하네’ ‘새롭다’ ‘좋다’고들 해주시더라. 그런 반응들이 굉장히 재미있다”며 “앞으로 더 반전을 드릴 수 있는 작품과 캐릭터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차기작 계획도 대략 세웠어요. 사극을 했으니까 연달아 사극은 또 안 하겠죠? (정해진 작품이 없어서) 곧바로 촬영에 들어가진 않을 테니까 가을이나 겨울 정도일 것 같고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현대극을 하고 싶어요. 목매고 사는 역만 너무 많이 해서, 이번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로코물이었으면(웃음).”

14년차 배우. 김지석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어렵사리 답을 내놨다. “다른 건 모르겠고요. 그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단점이 될 수 있는 걸 장점으로 커버하는 편이에요. 예컨대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면 그건 더 이상 무식한 게 아니라 솔직해지는 거거든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