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머리는 백발이면서 아들 흑채를 산 게 짜증이 나서 이런 걸 왜 샀냐고 역정을 냈다. 얼마냐고 물으니 3만원밖에 안된다면서 굳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어머니를 만나기 전날, 엄마 몰래 인영이를 데리고 가서 3만원 짜리 포크레인 장난감을 사줬다. 인영이는 우와 우와~ 하며 아빠 최고를 연발했다. 같은 3만원을 썼는데 어머니는 아들한테 좋은 소리를 못 들었고, 그 아들은 딸아이한테 최고의 아빠가 됐다.
인영이가 아픈 이후로 제일 소홀했던 건 어머니다. 내 자식이 아프니 어머니가 부담스러웠다. 지난해 여름 어머니 칠순이었는데 인영이 핑계로 제대로 잔치도 못해드렸다. 일주일에 한번 찾아가 뵙는 걸로 아들노릇 다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영이 나이쯤, 어머니는 홍제동 고가 밑 시장에서 좌판 장사를 하셨다. 자주 따라다녔는데 배고프다고 집에 가자고 조르면 어머니는 백원 짜리를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반짝이는 동전을 가지고 시장 통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해가 졌고, 어머니는 그날 팔지 못한 신발 꾸러미를 등에 지고 집에 가자고 하셨다.
내일은 흑채를 바르고 출근해야겠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