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5일 추가경졍예산안을 공개하며 '일자리 추경'이라고 불렀다.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 초첨을 두고 씀씀이를 정했다. 규모도 역대 네 번째로 크다. 특히 ‘누구를 위해 돈을 쓸지’ 타깃을 명확히 했다. '소득 주도 성장'이란 철학에 맞춰 청년, 여성, 노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집행 계획을 세웠다.
11조2000억원 추경 예산안의 또 다른 특징은 세 가지가 없는 '3無 예산'이란 점이다. 추경 예산을 편성하면서 빚(적자국채)을 내지 않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계획이 없고, 선심성 사업에 배정하지도 않았다. 오롯이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층 소득 보전, 사회적 약자의 경제활동을 위한 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 정부도 추경을 하기 위해 늘 명분과 씀씀이에 많은 신경을 썼다. "올해는 나랏돈을 이만큼 쓰겠다"고 당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이 쓰는 일이기에 합당한 용처를 제시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정작 추경 때마다 지적된 문제는 정부의 예산 편성안이 아니라 국회로 넘어간 뒤에 벌어졌다.
추경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에 나서며 '쪽지예산'을 끼워넣는 통에 본래 취지가 퇴색하곤 했다. 그런 예산은 대부분 다리를 놓고 도로를 만드는 SOC 사업이나 지역 특화용 선심성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
◇ 쪽지예산에 '청년 일자리' 증발했던 2015년
2015년 정부는 올해보다 많은 11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을 편성했다. 추경도 본예산과 마찬가지로 국회를 통과해야 집행할 수 있다. 추경안 국회 제출 전부터 여야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정부여당은 3% 성장률 고수를 위한 SOC 개발 예산을 상당부분 편성했고, 야당은 일자리 및 복지와 무관한 이런 예산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추경은 속도가 생명'이란 말이 있다. 집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편성하는 것이기에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빨리 집행되고, 그만큼 효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생명 같은 속도가 국회에서 보장된 적은 거의 없다. 2013년 정부는 17조원이 넘는 추경 예산을 편성했고, 예년보다 이른 5월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중 4조원 가까이를 쓰지 못해 결국 '불용액'으로 처리됐다.
2015년 추경안 국회 제출을 앞두고 경제지들은 이런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세출 확대 분야와 추경안 처리 시기를 놓고 여야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데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밀어넣기 등으로 통과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지역구 예산 밀어넣기도 문제다. 매번 추경은 본예산과 마찬가지로 의원들의 쪽지 예산이 성행했다.
추경도 본예산 처럼 총액을 유치한 채 증액이 이뤄진다. 심의 과정에서 삭감을 통해 예산을 확보한 후 지역구 예산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특히 올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쪽지 예산이 차단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3년 국회를 통과한 17조3000억원 추경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가 제출한 사업에서 5340억원이 감액되고, 국회 상임위원회가 추가한 지역 민원사업을 중심으로 5237억원이 증액됐다." (아시아경제 2015년 7월 3일 <'공' 넘어온 추경…野 반발·쪽지 예산 '고비' 남았다> 중에서)
이런 우려 속에 진행됐던 추경안 국회 심의 와중에 MBC는 <추경, 끼어드는 '쪽지 예산'에 청년일자리 예산 증발>이란 제목의 뉴스를 보도했다.
"우리 정치권, 예산 문제만 나오면 자기 잇속 챙기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메르스다 가뭄이다 해서 국가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이 지금 국회에서 한창 심의를 받고 있는데 이번에도 부끄러운 구태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청년 일자리를 지원하는 예산은 무더기로 삭감하면서 자신들의 지역구를 위한 쪽지 예산이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 쪽지-늑장-부실 심의에 '누더기 추경' 2013년
2013년 4월 정부가 제출한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쪽지예산과 늑장·부실·졸속 심의로 누더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초 예정했던 추경안 처리 시한은 거듭 미뤄졌고, 결국 그 돈은 제 때 쓰이지 못해 상당액이 '불용액'으로 처리돼야 했다.
당시 추경안을 심의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선 예산 심의에 필수적인 정책질의 시간에 의원들의 출석률이 너무 저조해 문제가 됐다. 국회 예결위원은 50명이나 됐지만 4월 27일 추가 정책질의를 시작할 무렵인 오후 5시 무렵엔 불과 6명만 회의장에 남아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열린 예결위가 오후 2시 속개될 때도 위원회 의사 정족수인 '재적위원 5분의 1 이상'을 간신히 넘겼었다. 질의를 한 의원은 50명 가운데 19명에 불과했고, 추가 질의도 3명에 그쳤다. 의원 참석률이 저조한 반면 현안이 산적해 있던 국무위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국회에 발이 묶여 있었다. 추경 처리는 시급한 데 여야 이견이 커서 주말에까지 회의를 연 거였지만 졸속으로 진행되고 말았다.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인 '쪽지예산' 행태도 기승을 부렸다. 올해 추경안과 달리 당시에는 15조8000억원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한 거였다. 그런데도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에 돈을 빼가기 위해 '쪽지 예산'을 슬쩍 끼워넣곤 했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추경안을 의결하려고 했다가 '쪽지'를 둘러싼 의원들 간 신경전에 정회를 거듭해야 했을 정도다.
같은 시기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쪽지예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황영철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경제·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추경을 틈타 상임위에서 쪽지 예산을 끼워넣고 있다는 보도에 굉장히 염려스럽다"면서 "시급한 추경예산에 지역예산을 쪽지로 끼워넣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