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AI)는 겨울에 유행하는 전염병이란 인식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겨울 전국을 휩쓴 AI에 대한 특별방역대책기간을 5월 30일 종료하고 평시 방역체계로 전환 지 불과 사흘 만에 전북 군산, 제주, 경남 양산, 부산 기장, 경기 파주 등에 다시 확산되고 있다.
◇ 2014·2015년 국내서도 6, 7월에 유행
‘AI=겨울 전염병’이란 인식은 한국 농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정부도 이에 근거한 정책을 펴 왔다. AI 특별방역대책기간을 해마다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로 정해 놓고, 6월부터 9월까지는 평시방역체제로 운영하곤 했다. AI 대응 매뉴얼인 긴급행동지침(SOP)에도 계절적 요인이 골격을 이룰 만큼 많이 반영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의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겨울철에 AI 발생 빈도가 높은 것은 겨울에 북쪽에서 철새가 날아와 머물고 떠나는 한국의 지리적 특성 때문일 뿐, 바이러스의 활동 메커니즘과는 큰 관계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열대 기후인 동남아를 예로 든다. AI가 여름이면 사라지는 바이러스라면 동남아는 아예 발병이 없어야 하지만, 1년 내내 섭씨 30도를 웃도는 동남아에서도 연중 AI가 발생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2일 AI 의심 신고가 들어온 제주시 애월읍의 토종닭 농가에서 검출된 H5N8형 AI 바이러스에 대한 고병원성 검사 결과를 5일 발표한다. 지난겨울 창궐한 AI는 주로 H5N6형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었다. H5N8형은 H5N6형에 비해 전파 속도가 느린 반면 잠복기가 길다.
H5N8형 AI는 우리나라에서도 겨울과 여름을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2014년 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3차례 전국을 휩쓸었는데, 1차는 2014년 1월 16일부터 7월 29일까지 이어졌다. 2차는 9월 24일부터 이듬해 2015년 6월 10일까지, 3차는 2015년 9월 14일부터 11월 15일까지였다.
6, 7월에도 AI 유행이 지속된 전례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방역 대책과 농가 인식은 여전히 ‘겨울 전염병’이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종식선언’ 이후 다시 발병하는 상황이 되풀이돼 왔다. 이에 우리나라도 계절과 무관한 ‘AI 상시발생’ 현실을 받아들여 정책과 대응 지침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해마다 AI 발병과 유행을 반복해 온 터라 우리나라 가금류 농장에는 AI 바이러스가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커 ‘상시 대응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 올 여름 재창궐 가능성은
농식품부는 5일 제주시 애월읍 토종닭 농가와 전국 군산 종계 농장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 검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미 양성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고병원성으로 드러날 경우 재창궐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에 검출된 H5N8형은 잠복기간이 최대 21일로 매우 길어 이미 더 많은 지역에 확산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산 농장에서는 지난달 27일을 전후로 중간유통상 격인 제주, 파주, 양산, 부산 등 네 곳 농가로 오골계 4천 마리 정도를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농가 모두 AI 간이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확인됐다. 중간유통상들은 주로 종계농장에서 사들인 닭은 전통시장이나 가든형 식당 등으로 판매한다. 현재까지 파악된 정황으로 볼 때 AI에 감염된 상태였던 오골계가 이들 지역으로 유통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AI 의심 신고가 처음 들어온 건 엿새 뒤인 지난 2일 오후였다. 당국이 AI 발생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 엿새간 'AI 오골계'가 다른 지역으로도 유통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군산과 제주 지역 바이러스의 고병원성 여부가 AI 재확산의 중대 기로가 될 전망이다.
H5N8형 바이러스의 경우 저병원성인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고병원성인 경우 가금산업에 타격을 준다.역대 두 번째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2014년 AI 사태 당시 유행했던 바이러스 유형 역시 H5N8형이었다. 아울러 닭보다 오리에 더 치명적인 것도 이 바이러스의 특징이다. 농식품부는 고병원성으로 확진될 경우 즉각 AI 위기경보를 네 단계 중 최고 수위인 '심각'으로 격상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나온 역학 분석 결과 AI 전파 위험이 크게 나타난 경기도 남양주·안성·포천·파주, 전북 군산·김제·부안·정읍, 충남 계룡·금산군·논산·보령·홍성군, 충북 청주, 제주 서귀포, 부산 기장군 등이다. 해당 지자체에는 관내 100마리 미만의 소규모 사육농가를 대상으로 가금류를 도축해 지자체가 사들이는 수매 방식으로 조속히 폐기 조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