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조차 건넬 수 없는 절망” 5년 기근 케냐 다녀온 박상원의 눈물

입력 2017-06-04 21:30
탤런트 박상원(58)씨는 요즘 마음이 부쩍 무겁다. 극심한 기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케냐의 투르카나 지역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살갗을 태울 것 같은 햇볕과 숨쉬기조차 어려운 폭염, 모든 걸 날려버리는 모래바람…. 5년 전부터 시작된 가뭄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재앙이었다. 박씨는 그들에게 희망이 깃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탤런트 박상원씨가 지난 5월초 케냐 투르카나 지역을 방문해 몸이 여윈 밀리센트 아무리아 로차칸 양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생수조차 건넬 수 없는 절망의 땅”
지난 5월초 방문한 투르카나 지역은 나이로비에서 경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오지였다. 

박씨는 이 땅에 내리기도 전에 참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니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땅이었다. 큰 강이 흐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재난영화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어요. 사막 같은 땅 위에 강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물 한강에 한 방울 남지 않고 메말랐다고 상상해보세요.”

말라버린 강 옆에서 수십 마리의 죽은 염소를 태우던 로마이레이 에렝 로차칸(52)씨를 만났다. 가뭄 이후 200여 마리가 죽었다고 했다. 염소에서 나온 고기와 우유로 살던 로마이레이 가족은 이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박씨는 “물 다음은 식물, 식물 다음은 염소, 염소 다음은 무엇일까요”라고 걱정했다.

박상원씨가 지난 5월초 케냐 투르카나에서 심각한 영양실조를 앓는 에쿠웜 에린 양을 안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할머니(61)와 세 살짜리 여동생을 위해 하루 12시간 동안 물을 길어오는 여자아이 릴리안 아쿠레테(11)도 있었다. 릴리안은 20ℓ짜리 물통을 들고 식수펌프가 있는 곳까지 왕복 30㎞를 걸었다. 릴리안의 부모는 2년 전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숨졌다. 할머니는 숯을 만들어 팔았는데 말라리아에 걸려 일을 못한다.

“릴리안의 물통을 대신 짊어져 봤어요. 2분도 채 못 걷겠더군요. 어린 여자애가 맨발로 그걸 이고 지고 걷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바닥은 햇볕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달궈진 자갈밭이었어요.”

박씨는 동생과 할머니에게 물을 건넬 생각에 기뻐하는 릴리안을 보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제가 들고 있던 500㎖ 생수조차 선뜻 건넬 수 없었어요. 작은 생수병이 동 나면 더 큰 갈증으로 고통 받을 것 같았거든요. 절망의 끝이었어요.”

케냐의 기근은 심각하다. 월드비전에 따르면 어린이 70만명을 포함해 총 270만명이 식량과 물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케냐 정부는 오는 7월까지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최대 400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그래도 희망을 꿈꾸고 있다. 말라버린 땅에서 숯을 만들어 팔거나, 야생과일을 빻아 나눠 먹으면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현지인들의 강한 의지도 확인했다. 박씨는 “20년 넘게 지구촌 곳곳의 재난지역을 돌아다녔지만 이번만큼 참혹한 땅은 없었다”면서 “투르카나에 많은 사랑이 전달되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거의 다 말라버린 강바닥에서 물을 뜨러 나온 아이를 만나 위로하는 모습. 월드비전 제공


“사랑 갚으려 사회봉사, 하나님이 더 큰 축복”
박씨는 1994년 월드비전의 ‘사랑의 빵’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 송파구 남포교회에 함께 다니던 월드비전 관계자의 권유가 있었지만 팬들로부터 받은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제가 배우로서 운이 좋았어요.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죠. 근데 의아했어요. 저보다 훨씬 잘 생기고 더 성실한 배우도 많은데 왜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을까. 그래서 사회봉사로 조금이나마 보답하려고 나섰죠.”

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을 24년째 꾸준히 하고 있다. 지금은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활약하는 등 사회봉사 연예인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참 이상하죠.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응원을 사랑을 받고 있다니! 이게 모두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