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쓰리 볼레로’, 현대무용도 재밌다는 것을 보여줬다

입력 2017-06-04 11:37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가장 파격적이었던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현대무용은 지루하고 어렵기만 한 것인가. 국립현대무용단의 ‘쓰리 볼레로’(2~4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대무용도 엔터테이닝하다는(재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던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의 바람은 성과를 거뒀다. 김용걸 김설진 김보람 등 국내 스타 안무가 3명이 각각 모리스 라벨(1875~1937)의 음악 ‘볼레로’를 가지고 만든 ‘쓰리 볼레로’는 개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으며 3일 공연이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객석 역시 기존의 현대무용에서 보기 어려운 열광적 반응이었다.

 라벨의 ‘볼레로’는 안무가라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음악으로 손꼽힌다. 169회나 반복되는 작은북의 리듬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 위에 다양한 악기들이 차례차례 추가되면서 변주되는 음색과 증폭되는 음량이 관객을 먼저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안무가의 입장에선 선율과 리듬을 쪼개 무용수들의 몸짓과 맞추기에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국내 무용계에서 ‘볼레로’는 안성수 단장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안 단장은 그동안 11개 버전의 ‘볼레로’를 내놓았고, 이 가운데 2005년엔 한국 안무가 최초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당스 안무부문 후보에 올랐다. 따라서 안 단장이 국립현대무용단 부임 후 첫 신작으로 후배 안무가 3명에게 ‘볼레로’ 안무를 의뢰한 것은 흥미롭다. 특히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라는 고질적이고 낡은 3분법을 거부하는 그는 벨기에의 유명 현대무용단 피핑톰 컴퍼니를 거쳐 ‘댄싱9 시즌2’ 우승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김설진, 안 단장이 이끌던 무용단 픽업그룹 출신으로 최근 맹활약하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이끄는 김보람 등 두 현대무용 안무가와 함께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파리오페라발레 솔리스트를 거쳐 현재 국내 발레계를 대표하는 안무가인 김용걸을 선택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가장 전통적이었던 김용걸의 '볼레로'.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쓰리 볼레로’는 세 안무가의 성향만큼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볼레로를 보여줬다. 발레를 베이스로 한 김용걸이 모리스 베자르를 오마주하는 등 전통적이라면 김설진은 볼레로를 과감하게 해체하는 파격을 보여줬다. 그리고 김보람은 전통과 파격의 중간 지점에서 볼레로를 분석하고 재조립 했다.

 김용걸의 ‘볼레로’는 우선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다. 무대 위에 수원시향 85명의 오케스트라가 라이브 연주를 하는 가운데 김용걸을 비롯해 37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는 블록버스터다. 무용계에서 오케스트라의 군무가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는 드문 사례로 음악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원을 그리고 춤추는 장면은 각각 모리스 베자르의 ‘9번 교향곡’과 ‘볼레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김용걸은 전통을 오마주하면서도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드러냈다. 무대막과 오케스트라 피트를 재치있게 활용해 손과 발만 보여주며 시작된 작품은 무대 위에서 거대한 문양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군무로 확장된다. 검은색 수트와 선글라스 차림의 무용수들은 발레에 기본을 둔 움직임 속에 마이클 잭슨 춤으로 유명한 문워크 등 여러 현대적인 움직임을 조합하고 편집했다.

 김보람의 ‘철저하게 처절하게’는 우선 볼레로 음악을 소규모 앙상블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작게만 편성한 것이 아니라 선율과 리듬의 재조립을 시도했다. ‘음악 이전의 소리, 춤 이전의 몸’ 추구를 목표로 한 김보람은 원곡의 뼈대와 소리를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그 핵심에 다가선다. 무대 양 편에 수원시향 연주자 10명이 오른 가운데 김보람을 비롯한 9명의 앰비규어댄스컴퍼니 단원들은 처음엔 음악 없이 의미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다가 중간중간 나오는 볼레로의 분절된 선율에 맞춰 격렬하게 춤을 춘다. 음악과 소리, 춤과 움직임에 대한 김보람의 치열한 고민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전통과 파격과 중간 지점을 보여준 김보람의 '철저하게 처절하게'.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한편 김설진의 ‘볼레로 만들기’는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볼레로 음악의 중독성에 주목했다. 라벨은 “나는 단 하나의 걸작만을 썼다. 그것이 ‘볼레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김설진은 악기들이 없어도 볼레로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음악그룹 리브투더는 그의 의도에 맞춰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음에서 볼레로의 선율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목소리와 자동차 소음 등 다양한 소리를 엮고 편집한 가운데 볼레로의 중독적인 선율이 띄엄띄엄 스치듯 나온다. 김설진을 비롯해 6명의 무버 단원들은 회색 수트를 입은 채 파편화된 소리처럼 파편화된 움직임을 보여준다. 서로 교묘하게 얽혀 하나의 구조 속에서 자리잡은 이들 움직임은 반복적인 현대사회를 벗어나고 싶은 현대인을 상징한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