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고] 정치적 신념으로 갈라진 선한 사람들
이세희 前 주인도대한민국대사관 정무과 전문연구원
2017년 5월 9일, 득표율 41.1%를 기록하며 문무를 겸비한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세계는 차기 대통령이 북한의 폭풍을 잠재우기를, ‘아시아의 호랑이’ 대열에 우뚝 선 한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한 번 더 그 위양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의 관심과 호응은 앞으로 우리 앞에 닥칠 난제를 간파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세대 간 양극화 문제이다.
그간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은 금번 선거가 세대 간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양파껍질 벗겨내듯 밝혀지는 이전 정권의 국정 농단의 진실에 국민은 분노했다. 세월호의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한 청년들은 이들과의 사회적 정체성을 동일시하면서 그들의 분노를 이재명 성남 시장의 극단적인 소신 발언을 통해 표출하고자 했다. 뿌리 깊은 유교 사회에서 부모와 상사에게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을 우리 젊은이들은 탄핵과 더불어 대선을 앞두고 청년층을 대변하는 이재명 시장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있었다. 하지만 청년 실업 문제로 놓고 보자면, 기득권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보다는 낫겠다 싶어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거나, TV대선 토론 이후 떠오르는 ‘여걸’ 심상정 후보로 지지율이 분산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제 대선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한 표를 사표(死票)로 만들기 보다는 당선이 유력한 문 후보에 몰아주었다.
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박근혜 마케팅’ 전략으로 춘향이가 향단이가 되기도 하고, ‘허접한 여자’에게 농락당해 이가 갈릴 지경이 되더라도 ‘용서가 제일 쉬었어요’를 집필할 판이었다. 이번 대선은 한국당에게는 처음부터 어려운 선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를 웃도는 득표율로 대선 득표율 2위를 기록한 홍 후보는 이만하면 당 세력 복원에의 의미가 있다며 위로했다. 그의 법조인으로서의 인생,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그 또한 묵묵히 인생을 견뎌 내며 나름대로의 신념과 철학을 갖고 살아온 나의 아버지 연배의 투박한 아저씨였다. 그러나 홍 후보의 한마디 한마디는 과거에 당신들이 정의로웠다고 믿었던 옛 청년들의 언어를 대변했다. 세월이 흘러 흰머리와 주름은 늘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는 스무 살 청년이라는 말이다. 60대 이상의 보수층은 이러한 홍 후보를 두고 1987년 대선 이후 처음으로 속이 다 후련하게 보수의 목소리를 낸 유일한 후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주요 요직을 맡고 있는 보수층은 홍 후보의 대학 동창 인터뷰와 같이 홍 후보의 나름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각종 선전물을 ‘단톡(단체카톡)’을 통해 공유했다.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아줌마계의 위력을 무시하지 말라. 일순간에 전국 곳곳으로 확산된 홍 바람은 소위 강남 8학군 치맛바람과 가히 견줄 만 했다. 요즘 환갑은 어디를 가나 막내 취급을 당하는 시대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각 대선 후보의 정책 공약에 귀를 기울이고 그 공약들의 현실성과 정책의 향후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했겠지만, 세대 별 양극화가 심해지자 유권자들은 각각 ‘꼰대’와 ‘나약해빠진 젊은이’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국정농단 사태라는 엄청난 고통에 이은 ‘국민 대통합’이라는 이번 선거의 아주 분명한 명제를 간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문재인 신임 대통령이 특정 세력을 표적으로 하는 인적 청산이 아닌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국민 통합을 약속한 가운데, 앞으로 대한민국의 향배는 우리 국민 모두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지지와 참여에 달렸다.
우리네 ‘꼰대’님들은 소위 ‘캥거루 족’ 이라고 불리는 청년들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팽배한 가치와 신념의 부재(不在)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유를 막론하고 요즘 초등학생들이 자기 집 평수와 차종을 소소한 일상의 대화거리로 삼는 현실은 ‘5포 세대’와 ‘헬조선’을 만들어 냈고, 기득권 세력 유지의 근본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자란 젊은 세대는 자신만의 철학과 신념, 혹은 인생의 기준이 아닌 토익(TOEIC) 점수에 급급해하고, 대의(大義)가 아닌 자기 하나만의 생존을 위해 경쟁하면서 동료의 뒤통수를 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그 무슨 순진한 소리냐’는 식의 혀 끌끌 차는 조언은 말아 달라. 적어도 당신이 해쳐온 그 시대에는 대의(大義)를 위한 나름의 양심과 품위가 있었다.
청년들은 어찌하여 일백 번째의 ‘자소설’을 집필한 당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지, 존재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지 못하는가?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누려온 그대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걸어온 고생길은 걷지 않겠노라고, ‘나는 특별하다’고 믿으며 자라왔다. 이는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오늘 날의 청년 세대는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자라난 것이 맞다. 우리는 격변의 전쟁을 TV와 드라마로 접하고, 경제 대공황의 기근과 서러움을 교과서로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꼰대’의 세련되지 못한 말투에 담긴 ‘생(生)에 대한 집착’을 기득권의 욕심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매우 죄송스러운 일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의 가장 큰 문제는 토론의 장(場)을 대학 졸업장과 함께 장롱 속에 고이 모셔놓는다는데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나 둘 쌓여가는 인생의 경험들은 분명 당신에게 선입견이나 편견이라는 작은 선물을 안겨줄 것이고, 그것은 점점 당신의 삶의 척도가 되고 남을 재단하는 기준이 되어 줄 것이다. 당신이 무언의 동의로 침묵하고 털어 넣은 부조리의 한 잔 술은 자기가 마치 기득권이라도 된 양 알딸딸한 기분에 취하는 정도밖에 안 된다. 떨리는 목소리일지언정 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내 한 몫 다 하겠다는 청년의 똑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청년의 존재 이유다.
뜨거운 선거 열기와 함께 불타오른 분노는 가라앉히고, 정반합(正反合)의 일치를 위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순간이다. 역대 대선 중 최다 대선 후보로 이목을 끌었던 이번 19대 대선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의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이제는 서로가 응원하고 위로하면서 맞추어 나가야 한다. 10년을 주기로 갈대처럼 흔들리는 정권 교체에 환호하지 말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대한민국의 신념과 가치를 논할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다.
▶ 이세희(31) 前 주인도대한민국대사관 정무과 전문연구원
영국 셰필드 대학교 정치학 석사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주인도대사관 정무과 전문연구원
LG R&D 센터 글로벌 홍보전략 VIP 의전 담당 (2011~2012, 1년)
美 NGO 기구 ACE(American Conservation for Environment) 환경 자원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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