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남 “인기에 취하면 안돼, 한 단계씩 천천히” [인터뷰]

입력 2017-06-03 00:01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반응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 몰랐는데, 너무 행복하죠. 사람들이 제 얘기만 하면 웃고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힙(Hip)한 남자. 둘째가라면 서러운 패셔니스타. 그런데 이 사람, 입만 열면 반전이다. 순박한 시골청년이 따로 없다. 구수한 사투리에 점점 빠져든다. 모델 출신 배우 배정남(34)이 예능에서 빛을 발한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영화 홍보 차 출연한 ‘라디오스타’(MBC)에서 그의 예능감이 빛을 발했다. 건강한 마인드까지 돋보였다. ‘슈어, 와이 낫?(Sure, Why not?)' 그가 내뱉은 긍정의 말 한마디는 단숨에 유행어가 됐다.

“졸지에 유행어도 생기고,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무슨 말만 하면 다들 ‘슈어 와이 낫’ 하더라고요.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게 어쩌다 얻어걸려 생긴 거죠. 전 지금 너무 행복하고 좋습니다. 저를 보면 사람들이 웃잖아요.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게 좋네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정남은 갑작스런 인기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터뷰 이후 방송된 ‘무한도전’에서 또 한번 웃음 폭탄을 터뜨린 그가 지금쯤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그가 출연한 영화 ‘보안관’까지 흥행에 성공했다. ‘보안관’은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전직형사(이성민)가 서울에서 내려온 성공한 사업가(조진웅)를 홀로 마약사범으로 의심하며 벌어지는 로컬수사극. 지난달 3일 개봉한 영화는 손익분기점(200만명)을 훌쩍 넘기며 260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극 중 배정남은 에어컨 설비 기사 춘모 역을 맡은 촌스러운 ‘시골 아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서 남다른 의미를 남길 만한 작품이다. 2009년 드라마 ‘드림’(SBS)부터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2012) ‘베를린’(2012) ‘마스터’(2016)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이토록 뜨겁게 주목받은 적은 처음이다.

“욕심 안 내고 들뜨지 않고 천천히 가려고요. 저는 (인기나 유명세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델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가려고요. 금방 잘 되면 금방 꼬꾸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좀 늦더라도 천천히 가려 합니다.”


-‘보안관’을 통해 처음 코믹 연기를 경험해봤는데.
“네. 근데 우리는 되게 진지했어요. 코믹이라기보다 휴먼이라 할 수 있죠. 전 사실 더 하고 싶었어요. 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런 갈증이 계속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드디어 보여주는 구나 싶었어요. 되게 좋았죠. 이 역할을 만나 행복했어요.”

-춘모 캐릭터와 실제 본인에게 닮은 구석이 많은가.
“주위 사람들은 (실제 제 성격이 어떤지) 다 알죠. ‘라스’ 나갔을 때가 거의 90% 이상 제 모습이었어요. 춘모도 실제 저와 되게 가깝고요. 지금 이 모습이 제 모습이에요. 거짓 없고 가식 없고.”

-기존 딱딱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답답함이 있었겠다.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어요. 이제껏 맡았던 역할들도 다 영광이었고요. ‘내 스스로 준비를 잘 해나가면 언젠가는 때가 오지 않겠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영화 공식 일정이 끝나고 울었다던데.
“아, 쫑파티 때요. 혼자 오래 살다가 (지방촬영 때문에) 이 팀과 계속 같이 지냈잖아요. 그런데 쫑파티 끝나고나서 혼자 집에 갔는데 되게 삭막한 거예요. 다시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원래 눈물이 많은 스타일인가.
“최근에는 좀 그렇더라고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니까. 원래는 참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근데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눈물이 나대요(웃음). 고맙던 게 한 번에 느껴지고 와 닿으니까. 이성민 선배님이 안 계셨으면 이렇게 못 해냈을 거예요.”


-부산 사나이가 2002년 홀로 상경해 15년간 서울 생활을 했다. 모델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나.
“제가 부산에서 옷가게를 했어요. 근데 김민준 형님이 가게에 왔다가 ‘혹시 모델 해볼 생각 없느냐’고 추천을 한 거죠.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었는데 괜찮은 회사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가보게 됐죠. 첫 소속사가 모델 시절 강동원 형이 소속돼 있던 ‘더 맨’이었어요.”

-배우로 이끌어 준 또 다른 은인 류승범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지인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처음 만났던 것 같아요. 10년도 넘은 것 같네요. 제가 돈도 못 벌고 반지하에서 어렵게 살 때 형님이 밥이랑 술 사주며 많이 챙겨주셨죠.”

-모델로 승승장구하다 갑자기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모델 수입은 적으니까 회사에서 강동원·여욱환 형 스타일리스트로 현장을 보냈어요. 그때 ‘논스톱’ PD님이 ‘카메오 한번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죠. 그렇게 몇 번 출연을 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배우로 주목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물질적으로는 힘들었죠. 근데 마음이 안 힘드니까 좋았어요. 행복했어요. 중간 중간 단편영화도 많이 찍었거든요. 그렇게 이런 저런 역할을 해보다보니 부끄러움도 없어졌어요. 이제 아무 역할이나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긍정의 화신인 것 같다.
“그렇죠.”


-어려운 집안 형편에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고 들었다. 자칫 삐뚤어질 수도 있었던 환경에서 스스로를 붙잡은 힘은 뭐였나.
“어릴 때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항상 ‘바르게 커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죠. 할머니가 17년 동안 배추장사하면서 손주들을 키우셨거든요. 할머니 때문에라도 ‘바르게 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어요. 제가 성공하기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효도를 하지 못한 게 한이죠.”

-그런 환경 덕에 사교성이나 타인과의 관계성이 좋은 모양이다.
“외로움 많이 타는 편인데 주위에 사람들이 많으니까 괜찮아요. 제가 워낙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누나·형들도 저 보면 재미있어하거든요. 60년생 형, 63년생 누나까지 다 친해요. 다들 패션 쪽이 있어서 마인드가 젊거든요.”

-미니홈피가 유행이던 2000년대 초반 얘기를 좀 해볼까. 당시 배정남의 인기가 굉장하지 않았나.
“일단 동대문만 가면 제가 영웅이었어요. 옷가게마다 ‘우리 옷 입어 달라’고 난리가 났죠. 동대문에서 도매하던 친구네 티셔츠를 한번 입었었는데 5만장이 나갔다더라고요(웃음). 그때 (인기를) 많이 느꼈죠.”

-패션에 관심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는 ‘워너비’로 통했는데.
“그땐 그렇게 보대예(웃음).”

-본인 나름의 패션 철학이 있나.
“패션은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갖다 놔도 믹스매치를 못하면 맛이 없거든요. 명품을 발라놔도 소용없어요. 근데 싼 재료를 가지고도 진짜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죠. 믹스매칭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끗 차이거든요.”

-끝으로 모델 출신 연기자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요즘 너무 빨리 떠요. 자기가 갖고 있는 내공에 비해서 금세 주목을 받죠. 근데 오히려 그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빨리 뜨면 (인기에) 취하잖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떴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끝난 거 아니다. 천천히 가라’고 늘 얘기해줘요. 저도 겪어보니 알겠더라고요. 배우로 롱런하려면 기본기도 쌓고 단단하게 준비해서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하죠. 그래야 무너져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