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유치원생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통학버스 화재 사건은 운전기사의 방화로 인한 비극이었다. 운전기사는 사건 발생 22일 전부터 달력에 하루하루 ‘X(엑스)’를 표시하고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2일 중국 산둥성 공안청의 사건 브리핑 내용을 전달받은 뒤 “운전기사의 고의적 방화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극단적이고 엄중한 폭력 범죄였다”며 “운전기사는 오래 전부터 수입 감소로 인한 불만이 있었고, 해고 통지 예고를 전해들은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 5월 9일 오전 9시(현지시간)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환추이구 타오자쾅 터널에서 발생했다. 유치원생 11명이 탑승한 통학버스는 바로 앞 청소차와 추돌한 뒤 불길에 휩싸였다. 한국 국적 10명, 중국 국적 1명 등 유치원생 11명이 화염 속에서 사망했다. 중국인 운전기사도 숨졌다. 1명뿐이었던 중국인 인솔교사는 중상을 입었다.
산둥성 공안청은 이날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그 내용을 주중한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주칭다오한국총영사관 관계자는 브리핑에 참석해 내용을 확인했다. 공안은 조사 과정에서 운전기사의 계획적 방화 정황을 포착했다.
운전기사는 지난 4월 20일 낮 12시쯤 한 마트에서 휘발유통을 들고 라이터를 구입했다. 그는 비흡연자였다. 사건 당일 오전 7시 화물칸에 실었던 휘발유통을 운전석 쪽으로 옮기고 운행을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CCTV에 모두 포착됐다. 운전기사가 방화를 계획한 정황으로 볼 수 있다.
공안의 조사 결과에서 바로 앞 청소차와 추돌은 화재 원인이 아니었다. 공안은 통학버스가 시속 17~25km 수준으로 주행했고, 엔진과 연료통 상태가 양호한 점으로 볼 때 추돌사고로 인한 발화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운전기사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적었다. SNS 활동이 없었고 문자메시지 기록은 적었다. 유언도 없었다. 운전기사 부인은 공안 조사에서 “남편이 4월 17일부터 달력에 X자를 표시했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운전기사는 통학버스 운행을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월 소득은 4000위안. 야간 운행 보조금이 월 200위안가량 감소한 2015년 3월부터 억울한 마음을 토로하거나 회사 상사, 동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일이 많았다. 지난 3월부터 야간운행이 다른 기사에게 넘어가면서 월 소득은 2300위안 수준으로 감소했다. 사건 발생 하루 전인 5월 8일에는 학교 측으로부터 해고 통지가 예고됐다.
유치원생들을 태운 통학버스는 사건 발생 당일 오전 8시50분쯤 타오자쾅 터널로 진입했다. 그리고 9분 뒤 화재가 발생했다. 공안은 블랙박스를 분석한 결과 “발화 지점이 좌측 후방이었다”고 밝혔다. 처음 알려진 발화 지점은 버스 오른쪽 출입문이었다. 사건 당시 주변을 지나던 차량의 운전자나 탑승자들이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으면서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진청 산둥성 공안청 부청장은 “웨이하이 통학버스 참사 원인은 운전기사의 방화였다. 발화 지점은 운전석 뒷자리로 통학버스에서 운전기사가 산 라이터와 휘발유 흔적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족은 공안 수사 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딸을 잃은 유족 대표 김씨는 “중국 수사당국의 납득되지 않는 설명이 운전기사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라며 수사 결과에 대한 불복 입장을 밝혔다.
김철오 기자,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copd@kmib.co.kr